실전 같은 협박에 능한 트럼프, 협박을 실전처럼 본 문재인, 협박은 협박으로 본 김정은
문재인, 대화 기회 마련했지만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어
대화하고도 성과 없으면 대화에 대한 기대 남지 않아 진짜 위기가 찾아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장이라도 무력을 행사할 것처럼 북한을 위협해왔다. 위협은 때로는 거친 발언이었고 때로는 군사력 시위였고 때로는 ‘코피’ 전략에 반대한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의 내정을 철회하는 것과 같은 인사 조치였다.
그런 전략이 북한 김정은에게 통해 대화에 나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미 군사훈련은 해도 좋다고 통 크게 말한 김정은이다. 그를 대화에 나서게 한 건 경제제재라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다. 트럼프의 위협이 잘 통한 건 오히려 문재인 정부다. 정부는 일본이나 미국 하와이가 하는 전쟁 대비 훈련은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경제적 이익에 관해서는 지독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실제 전쟁은 누구보다 꺼린다. 그의 책 ‘협상의 기술’을 읽어보면 거칠게 말하는 것은 실은 진짜 싸움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어서다.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무력행사는 북한의 ‘코피’를 터뜨리는 정도다. 그거라도 할 수 있을지 논란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식 무력시위의 이중성을 보지 못하고 전쟁의 전(前) 단계로만 보려 했다면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서는 잘 통했으나 안보에서도 통하는지 불안했던 트럼프식 협상 기술의 효용성을 입증하고 싶어 하던 그에게 북한과의 회담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한국 특사단이 ‘트럼프님께서 주도한 압박이 주효해 어쩌고저쩌고’ 하니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5월까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말했다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미국 정상이 북한 지도자를 만나주는 것 자체가 미국이 오랫동안 아껴온 카드인데 함부로 썼다는 느낌이 든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백악관이 발표하지 않고 한국 특사단이 미국 기자들 앞에서 직접 영어로 발표하도록 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이 주선했으므로 그 성공도 한국이 책임지라는 뜻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1월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유도에서부터 무려 5개월의 시간을 핵 프로그램 완성을 목전에 둔 북한에 벌어준 책임이 오롯이 문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나쁜 결과는 남 탓으로 돌릴 준비도 미리 해두는 것이 그의 몸에 밴 협상 기술인 듯하다.
프레임은 늘 흠잡을 데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문 대통령이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받아내려 할 긴박한 양보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 보류다. 그 대신 북한은 ‘핵 동결=입구, 핵 폐기=출구’로 내걸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벌이려 할 것이다. ICBM은 보류한다고 하더라도 핵 폐기를 조건으로 미국과 평화를 맺으면 김일성 일가가 3대에 걸쳐 추구해온 핵 보유의 목적은 달성된다.
핵과 평화의 맞교환은 논리적으로는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 보장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아 미군 철수 등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요구가 잠재해 있다. 문 대통령은 민족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듯한 비장한 자세로 운전대를 잡았으나 악마들을 다룰 남다른 치트키(cheat key·게임에서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화 말고는 무슨 대안이 있는가.’ 문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그렇게 물었다. 핵을 갖고도 무너진 옛 소련의 사례는 오히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핵만 가진 빈털터리로 만드는 것이다. 핵은 절대무기이지만 함부로 쓸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설혹 대안이 없다고 하더라도 있는 척해야 할 판에 ‘대화 말고는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발언은 스스로의 협상력을 깎아 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화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다. 다만 대화는 시기가 중요하다. 정말 절묘한 시기를 택한 것인지 지켜보자. 대화를 하고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아 대화에 대한 기대가 더 이상 남지 않는 순간 진짜 위기는 시작된다. 그때 대화의 결과는 제쳐두고 대화의 성사만을 위해 무작정 달려온 사람은 칭송을 고스란히 비난으로 돌려받는다. 위기는 기회가 되고 기회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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