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안보 경제질서 뒤흔들고 시진핑은 장기집권 위한 헌법개정
역사 본류 역행한 이들 연출은 코미디 아니면 비극으로 끝날 연극
文 대통령, 반동의 자멸적 무대에서 대한민국 운명 창조의 길 개척할까
2018년 3월 9일과 11일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9일(미국 시간 8일)은 백악관에서의 두 행사, 트럼프·김정은 5월 회담 발표가 극적 파격적 충격적 방식으로 나타났다. 또 2시간 전엔 레이건 정부 이후 30년 만에 안보를 이유로 철강과 알루미늄 보복관세 발동 서명식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연한 두 연극의 파장은 단기 중기 장기 모두 미국발(發) 세계 안보, 경제 무역질서를 흔드는 일이다. 안보 동맹질서와 자유무역의 동시적 파괴도 가능한 조치다.
11일은 7년 전 상정외(想定外) 후쿠시마 대지진 폭발이 있던 날. 시진핑은 중화제국주의 세계질서, ‘중국몽’에 1인 장기집권 장치가 꼭 필요하다며 99.83%의 찬성으로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이미 소련에서도 폐기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을 부활시켰다. 덩샤오핑 개방근대화에 대한 대반동이다.
그런 시진핑 황제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극찬했다. ‘그는 지금 종신 대통령, 그는 훌륭하다. 그는 해낼 만할 인물이다.’ 이달 3일 공화당 후원 모임에서다. 이 중국 반동의 밑바탕엔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의 잔꾀가 있다. “빅데이터를 사용하면 시장의 움직임도 예상할 수 있어 계획경제도 가능하다.” 바로 컴퓨터가 실용화된 1980년대 후반 붕괴 직전 모스크바 경제계획자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와 똑같다.
5일 평양의 김정은도 첫 번째 대한민국 특사를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비핵화 ‘말’을 하고, 트럼프는 한국 특사를 ‘서둘러’ 불러 45분 만나곤 기이한 방식으로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발표토록 했다. 연극도 이런 연극이 없다. 대(大)기적의 연극일지, 대(大)반동의 연극일지 지금은 단정키 어렵다. 이 연극이 사기대화 아닌 진짜대화, 가식의 평화가 아니라 정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대(大)기적을 만들기 바란다.
길게는 1972년, 짧게는 1990년대 이후 북한과의 거듭된 극적 대화의 희극적 비극적 실패경험, 그리고 충동적이기보다 반측(反則)적 냄새가 강한 3·5, 3·9의 발표 과정 그리고 개인의 연출된 입이나 머리를 넘는 엄연한 지정학적 구조와 각국의 정치조건, ‘미투’ 운동의 지각 변동, 전 세계 ‘밀레니엄 세대’의 분노를 종합적으로 곱씹으면 개인기에 의한 연극의 결말을 낙관할 수 없다. 특히 자유 민주 평등 인권 다원 개방 안전 평화라는 좌·우 동·서양 모든 종교를 넘는 인류역사의 섭리, 진화의 기본 공리(公理)와 보편가치의 관점에서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은 역사 본류의 철저한 반역들이다. 이들의 연출은 잘해서 코미디이고, 아니면 비극으로 끝나는 연극이다.
대한민국의 가치, 건국 이후 이룩한 근대화 기적의 밑바탕은 문명진보의 본류인 자유주의, 공화주의에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 이성, 이상이요, 가치이다. 대한민국은 21세기 초 세계적 대(大)반동기에 역사 본류를 지키고 있는 외로운 섬(孤島)이 됐다.
동북아시아, 아시아는 물론 제3세계 통틀어서 자유시민 민주정치 근대성장과 개방 다원이 작동하는 유일한 나라―대한민국이다. 아직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 중국은 시진핑 1인 1당 체제, 러시아는 20년 철권통치 푸틴이 영구집권을 노리고, 북한은 3대 세습 독재의 미화를 위해 주체사상을 내건 광폭한 유사종교집단이다. 우리 주변 그 어디에도 시민의 나라, 민주의 나라는 없다.
국민 시민을 넘어, 국경 인종 넘어, ‘사람’주의까지 외치고 촛불민주주의 혁명의 대표임을 자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대한민국을 에워싼 이 반동의 자멸적 무대를 헤쳐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서는 운명 창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까. 대반동, 문명사적 지각변동은 결국 종말론적 자멸적 아픔을 거치면서 머지않아 새롭고 성숙한 자유 평등 연대의 지구촌 새 질서가 태동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취와 가치를 지키고 전쟁을 두려워 말고 자강의 결의와 실천에 충실하고, ‘21세기 스위스’로 거듭나면 우리는 동북아시아를 넘어 새 인류문명 창조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역사는 직선으로 단선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옆과 뒤로도 가고 회전도 하지만 긴 시간의 본류는 늘 보다 자유, 보다 평등, 보다 정의 쪽으로 도도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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