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일호]문화예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6일 03시 00분


물질만능주의에 경종 울린 고흐, 보수적 사회에 저항한 바스키아… 자유롭게 사회 비판해온 예술가들
관료주의적으로 자율성 강조하면 오히려 남는 것은 ‘수동적 자율성’
예술가가 추구하는 진짜 자율성은 들판에 풀어놓을 때 비로소 빛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캠퍼스가 다시 활기를 찾는다. 혹독한 추위 뒤에 찾아온 봄기운과 신입생들의 기대에 찬 얼굴이 캠퍼스를 메운다. 강의가 다시 시작되면서 선생님들도 바빠진다. 필자가 맡은 과목은 미술이론과 미학에 관한 것이다. 주로 미술작품을 예로 들면서 미학적 개념과 미술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일이다. 미술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술작품은 각 작가의 창의적 산물인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나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다. 그래서 강의 첫 시간에 예로 드는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나 장미셸 바스키아다.

고흐가 살았던 19세기 말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질 만능적인 풍조가 유행했고, 상대적으로 종교나 도덕 같은 정신적인 것의 가치가 경시되던 시대였다. 이런 배경에서 고흐는 인간 정신이 향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작품으로 나타내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순탄치 않기에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과 번뇌를 그림 속에 솔직하게 표현했다. 고흐 그림에 등장하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삼나무나 어딘가를 향해 뻗어가는 길은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의미하고, 구불구불한 선이나 거친 물감 자국은 그가 겪은 고통과 번뇌를 암시한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바스키아는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된다. 미술사 속에서 흑인 화가가 단 한 사람도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백인 중심의 뉴욕 화단이 새롭게 주목한 화가였다는 점에서 ‘블랙 피카소’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살았던 1980년대 미국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의 집권으로 경제적 번영은 이루었지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바스키아는 단어들, 이미지들, 도형 등이 아무 관련성 없이 뒤섞이고 떠다니는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서 자율적 예술정신이 억압받는 보수적 분위기에 저항했다. 두 작가 모두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그 시대를 비판하면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를 새 정부 문화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제시했다.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동체의 다양성을 실현하며, 사회의 창의성을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이야 문화 자체의 본질이니까 그렇다 치고, 가장 거부감이 드는 부분은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예술가들 스스로 예술과 문화 그 자체의 가치를 추구해 가는 것인데,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쳐 나가려 하는지 의문이 든다. 개인의 문화적 권리 보호와 증진, 문화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이라는 세부적 방향성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의식하고 만든 것임은 알겠지만, 어설픈 문화정책을 펼쳐서 자율성을 옥죄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어 하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2월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강당에서 진행된 새 문화정책 준비단 현장토론회에서 자율성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문화+서울’ 3월호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풍물만 30년을 해 왔다는 어떤 이는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강습도 해주고 수준에 맞는 공연도 올리며 재미있게 살아왔는데, 언제부턴가 이것이 좋아 보인다고 정부가 어설프게 정책을 시행하면서 활동 기회도 줄었고 설 자리도 없어졌다고 하소연했다. 문화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정부 정책이 현장과 닿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그대로 놓아두면 자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사람들을 피동체로 만들어 버린다 등의 지적도 있었다. 국가가 정책을 통해서 문화와 예술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고, 굳이 자율성이라는 목표를 내세우지 않아도 문화예술계는 이미 자율적으로 잘 해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구체적 문화정책을 지켜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도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상처받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문체부의 각오치고는 너무 형식적이며 관료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고흐나 바스키아가 국가 정책이나 가치들에 기웃거린 작가였을까. 그들은 그 시대나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자기 존재와 예술의 자율성에 천착했던 작가들이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예술 행위의 이런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꾸며진 자율성을 위해 억지로 정책을 만들어 내기보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정책을 펼치면서 예술을, 아니 예술가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한국의 고흐나 바스키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아닐까.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빈센트 반 고흐#장미셸 바스키#물질 만능주의#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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