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 신기루가 내 마음에 든다면. 희망을 갖는 일이 싫지 않다면. 웅긋쭝긋하고 햇볕으로 장식된 저 도시를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에 든다면.”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야간비행을 하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는 오아시스와 대상(隊商)을 찾아 나선다. 이틀 동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를 80km 가까이 헤맨다. 이 문장은 죽음과 같은 갈증을 느끼며 오던 길로 되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의 외침이다. ‘그건 신기루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신기루를 사랑하고 햇볕의 도시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기적을 가져오는 희망의 끈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대지는 죽음을 넘나드는 생텍쥐페리의 기록이다. 그에게 대지는 저항이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끝없이 복원하는 생명의 의지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 아라비안 대상에게 구조되면서 ‘나는 이 세상에 원수가 한 사람도 없다’고 속으로 뇌는 각성이 바로 그것이다.
방황과 고뇌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더 이상 물러날 지점이 없는 나락뿐’이라고 주저앉는 절망의 시간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그 시절 이 문장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내 들곤 했다.
오늘도 대지 위 신기루와 도시 불빛이 무한한 생명의지로 다가오는 이 문장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암투병 중인 가까운 고향 선배가 며칠 전 암이 전이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국어사전을 곁에 놓고 신문을 읽던 분이다. 더불어 나이 드는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맨 먼저 이 문장이 떠올랐다. 참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있다.
어쩔 때는 나의 사유의 깊이와 경계가 젊은 시절의 그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와 있지 않다는 부끄러움이 일기도 한다. 공부가 게으른 탓이겠으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진리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대지나 삶의 진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리고 이 문장의 언저리에서 여일하게 서성이고 있는 나의 모자람이 사실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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