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녁 식사에 빨간 도미 한 마리가 식탁 중앙에 자리한 날에는 뭔가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 집의 경우 아버지가 특별 보너스를 받았다든지 직장에서 진급한 날을 의미했다. 간장과 미림으로 간하여 통째로 조린 도미가 그 모든 말을 대신해주었다. 아버지는 머리 부분을 특히 좋아하셨는데 눈알과 입, 아가미 부분을 안주 삼아 아와모리(泡盛·쌀로 만든 증류주)와 함께 시작하셨다. 그리고 배 근처 부드러운 부분으로 내려오고, 우리 형제들은 꼬리부터 시작해 몸통으로 올라가며 먹다 보면 뼈만 앙상해지고 접시 바닥이 보였다.
생선의 왕으로 불리며 봄 산란기가 되면 지방기가 많아지면서 살도 오르고 색도 더 붉어져 최고의 자태를 드러낸다. 에도시대 시 한 구절을 살펴보면 “남자라면 사무라이, 대들보는 편백나무, 생선이라면 도미”라고 했을 정도로 모든 생물에 ‘신분’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요즘에 가장 비싼 생선은 복어, 참치다. 복어는 맹독 때문에 먹는 게 금지되고 참치는 과하게 기름진 탓에 쉽게 상했지만 독을 제거하는 조리법이 개발되고 냉장 냉동고의 개발로 세상이 변하고 사람의 입맛도 변했다. 에도시대에 도미가 최고 대접을 받은 것은 바다에서 수도였던 교토까지 신선하게 운송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미 색처럼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의 영향도 컸다.
행운을 부른다는 빨강,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무장한 비늘과 등 쪽의 지느러미 부분의 날카롭게 솟은 모습이 사무라이 정신과 쇼군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1604년 3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탄생 기념 잔치에 200마리의 도미가 필요했다. 행사를 위해 정부에서 직접 어항을 개발하고 관리함으로써 행사가 가능하게 만든 후 일반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도미가 레드 스내퍼(red snapper)라 불리며 꽤 비싸다. 카르파초, 스파게티, 리소토를 만들기도 하고 통째로 익힌 후 레몬을 곁들여 내기도 한다. 2015년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레스토랑 메뉴에는 레드 스내퍼로 주로 표시돼 있지만, 틸라피아나 록피시를 대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양 음식을 배우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 거의 모든 생선은 몸통 살 흰 부분 2쪽만을 요리에 사용하다 보니 먹기는 쉽지만 동양에서 최고로 치는 머리 부분이나 배 부분, 내장 등은 버리거나 소스를 만들기 위한 기본 국물용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요즘 요리사들은 동서양 요리를 잘 섞어 응용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 머리 부분을 버렸다.
내가 일하는 주방에서는 머리 부분을 조림식으로 조리한 후 뼈와 살을 분리한 후 여러 가지 다진 허브를 섞어 리소토를 만들고 아가미살 두 쪽과 부드러운 뱃살은 따로 요리해 직원의 식사로 준비하기도 했지만 맛을 아는 단골 미식가들에게는 서비스로 내곤 했었다. 명품 생선답게 1785년 “도미의 100가지 요리방법”을 담은 요리책이 발간돼 오늘날에도 요리사들이 참고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도밋과 생선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아마다’라고 불리는 옥돔은 교토의 가이세키(정식) 요리로 유명하다. 붉은색과 단맛 때문에 벚꽃이 피는 계절과 연관지어져 사랑받고 있다. 몇 해 전 제주에서 맛본 옥돔은 살짝 간을 해서 바람에 말린 것이었다. 나는 오일을 좀 넉넉히 넣고 튀기듯 조리해서 부드러운 비늘의 바싹한 맛, 껍질과 살의 부드러운 단맛이 함께 어우러진 제주 옥돔 요리를 좋아한다. 그 맛이 생각날 때마다 제주도로 봄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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