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중의원 의원회관으로 이어지는 약 300m의 보도에는 ‘아베 사임’ ‘내각 총사퇴’ 등의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가득했다. 지난주부터 급속히 확산 중인 반(反)아베 시위였다. 언뜻 봐도 2000명 가까이 돼 보였다.
인파를 헤치며 나가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마이크를 잡은 남성은 “이웃 나라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국민이 끌어내렸다. 우리도 시민의 힘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물러나게 하자. 20만 명이 국회를 포위하자”며 열변을 토했다. 일본의 평화인권 운동가 후쿠야마 신고(福山眞劫) 씨였다. 그는 “작년, 재작년 서울에 갔을 때 촛불시위의 에너지를 직접 느꼈다”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날 시위에서 연사들은 “박근혜처럼 아베도 감옥에 보내자”, “일본에서도 촛불혁명을 이루자”고 외쳤고, 참가자들은 “그러자”고 호응했다.
한국 기자라면 다들 반색했다. 매일 시위에 온다는 40대 주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큰 힘이 된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실제로 한국 누리꾼들은 ‘#RegaindemocracyJP(일본의 민주주의를 되찾자)’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본의 시위를 응원하는 글을 인터넷에 퍼뜨리고 있다. 아베 신조 기념 초등학교를 짓겠다며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를 내세워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모리토모(森友)학원, 이를 감추려 공문서에서 아키에 여사의 이름을 지운 재무성의 문서 조작 등. 이런 행태들에서 박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와 이에 가담한 공직자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일본은 열차·비행기가 지연돼도 항의하는 사람 한 명 없는 나라다. ‘법과 원칙’에 따라 공평하게,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한다는 사회적 신뢰 때문이다. 관저 앞 시위와 30% 안팎까지 떨어진 내각 지지율은 그 오랜 신뢰가 배신당한 결과다.
돌이켜 보면 아베 정권에선 유난히 법과 원칙이 왜곡된 경우가 많았다. 방위성은 지난해 초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자위대의 일일보고 문서를 폐기했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발견되는 바람에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당시 방위상이 사임했다. 가케(加計)학원 스캔들 때는 문부과학성이 ‘총리의 의향’을 언급한 문서를 숨겼다가 전직 사무차관의 폭로 후 재조사해 14건을 찾아냈다. 올 초엔 후생노동성이 ‘없다’고 단언했던 재량노동제 자료가 창고에서 나왔다. 정권에 불리한 자료라면 일단 은폐하고 보는 일이 반복되자 참다못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시위대의 분노가 아베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기자는 2015년 안보법 제정·개정 때 12만 명(경찰 추산 3만 명)이 국회를 에워싼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여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거리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끌어내린 경험이 없는 일본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아직까지 시위 규모는 크지 않고, 아베 총리는 강행 돌파할 태세다. 3년 전 시위의 주역이었던 학생단체 실즈의 전 리더 오쿠다 아키(奧田愛基) 씨는 최근 SNS에서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며 한국을 본뜬 대규모 촛불시위를 제안했다. 만약 관저 앞에 촛불의 바다가 펼쳐지면 아베 총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시위대는 ‘한국도 대통령을 몰아내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렸다’며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일본의 촛불민심이 최고권력자를 끌어내린다면,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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