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우버(자가용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김용석(Kim Yong Seok)’을 “킴영쎄옥” 쯤으로 어렵게 발음한다. 그런데 커트라는 이름의 40대 후반 백인 남자 우버 기사가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에 놀라 물었다.
그는 미국 동남부 한 대학 도시에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오래 일했다고 한다. 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많아서 이름 읽기에 익숙하단다. 그런데 왜 고등학교 교사가 우버 기사가 됐을까.
그는 “교사할 때랑 버는 돈은 비슷한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해 쓸 수 있어서 우버 기사가 더 낫다”고 했다. 남는 시간엔 또 하나의 일자리를 준비한다. 그는 “차는 우버를 통해 택시로, 집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텔로 활용하면서 사는 게 이 시대 미국인들의 사는 법”이라며 웃었다.
집과 차를 통째로 시장에 내놓으며 ‘임시직 경제(gig economy)’에 몸을 던진 커트 씨의 경우처럼, 많든 적든 누구나 시장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커트 씨처럼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비교우위가 바뀔 때마다 변화에 적응하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커트 씨와 달리 한국 택시는 상대적으로 시장 논리에서 비켜서 있다. 최근 벌어진 카카오 택시 유료화 논란의 핵심은 피크 시간대 택시 수요와 공급 불균형에 있다. 카카오 분석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과 밤 11시경 전국 택시 호출은 각각 20만 개 안팎인데 그 시간대 빈 택시는 2만∼3만 대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여러 번 하는 중복 호출을 감안해도 수요가 공급보다 네다섯 배 많아 보인다. 전국 택시가 25만 대이니 절반가량 운행해야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택시 운행은 수요가 없는 낮 시간대에 몰린다. 차 막히는 출퇴근 시간을 피하는 탓이다. 그런데도 택시가 너무 많아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결국 택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푸는 핵심은 ‘어떻게 하면 택시들이 아침과 밤 피크 시간대에 거리에 나오게 할 것인가’이다. 수요가 늘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택시 기사 입장에선 출퇴근 시간이나 오후 11시에 열심히 사람을 실어 나를 이유가 없다. 편한 시간에 카카오 택시 앱을 이용해 ‘스마트하게’ 장거리 몇 건을 뛰는 게 이익이다. 실시간 정보 혜택을 택시만 보는 셈이다. 우버의 경우엔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두세 배 오르고, 그만큼 공급량이 늘어나 균형이 맞춰진다.
카카오의 제안은 사실상 피크 시간대 요금을 올려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요금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택시 업계는 성명서를 내고 반발했다. 돈을 더 받는 것은 좋지만 공급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순간 카풀 서비스의 시장 진입 빌미가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속내다. 열쇠를 쥔 정부는 택시요금 탄력 적용이나 카풀 서비스 진입에 대해 기존의 규범에만 묶여 있다.
한국 택시는 면허제로 보호받는 것 같지만 반대급부로 낮은 요금과, 수요와 무관한 요금 체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데 대한 소비자 불만이 누적되면 카풀의 시장 진입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택시도 소비자도 불만인 상황이다.
시장에 고스란히 노출된 커트 씨를 ‘헬 미국’ 택시 기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천조국’(돈이 많은 부자 나라라는 의미) 택시 기사다. 기업과 시장의 논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성장은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금 한국 택시 시장은 기업가의 도전도, 기술 발전의 혜택도, 택시 기사의 복지도 얻지 못하는 답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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