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강원 홍천군 내촌천 가에 아직은 군데군데 얼음이 남아 있지만 봄을 알리는 소리가 상큼하고 힘차다. 겨울을 이겨낸 쏘가리와 꺽지도 이제 먹이 활동을 하며 움직이리라. 반딧불이 애벌레들도 2, 3회 껍질을 벗었을 테고 돌 밑 다슬기를 잡아먹으며 열심히 몸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겨울 미처 정리하지 못한 비닐 멀칭(농작물을 재배할 때 흙 표면을 덮어준 것)을 걷어내고 콩가지, 들깨가지를 정리했다. 오미자와 아로니아에는 웃거름도 줬다.
조금 늦었지만 매실나무, 오미자나무, 개복숭아나무도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옥수수, 고추 등 대부분 농작물은 밭에 씨앗을 직접 뿌린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비닐하우스 내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하나 더 만들고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길러 밭에 심는다. 생존율이 훨씬 높고 성장이 고르기 때문에 그렇게 봄 농사를 시작한다. 수확을 빨리 할 수도 있고 작업도 수월해 소출도 많다. 노동력도 절감된다.
부지런한 옆집 아저씨는 이미 옥수수·배추 육묘를 시작했고 이장네도 단호박 모판을 만들고 어제는 고추씨를 소독했다.
육묘 후 기른 모종을 밭에 제대로 심는 게 좋은 줄은 알지만 그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 위에 부직포를 덮은 뒤 아침저녁으로 부직포와 비닐을 덮었다 젖혔다를 매일 반복해야 한다. 햇볕과 통풍, 온도, 습기 등을 적절히 맞춰야 한다. 경험이 없는 나는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더 바빠질 듯하다. 오미자 밭과 매실나무 과수원 사이 자투리땅 300여 평에 서리태를 심을 것이다. 8, 9월경 오미자 밭 활대 아래 놀리고 있는 땅에 명이나물을 키워 볼 생각이다. 이 밭들은 수년간 농사를 짓지 않아 땅을 좀 더 깊이 갈고 퇴비도 많이 줘야 한다. 좀 더 힘든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그래도 주렁주렁 콩이 열리고 명이나물이 예쁘게 올라오는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올해 시작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마을 일이다. 마을 입구, 내촌천 가와 진입로 주변에 백일홍, 마리골드, 한련화를 심을 계획이다. 물론 농사일에 바쁜 주민들을 설득해 며칠간 공동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 난제다. 하지만 이미 이장님과 몇몇 분의 동의를 받아 놓았다.
분홍 꽃, 노란 꽃이 활짝 핀 마을. 동화마을에 걸맞은 예쁜 마을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삽과 호미를 들고 한련화를 심고, 잠시 막걸리 한 잔에 3년 뒤 동화마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원주민과 귀촌 귀농인들이 손에 손잡고 마을의 미래를 토론하는 모습, 정말 어떤 그림보다도 감동이다.
또 우리 마을 농작물을 활용한 요리교실도 개설한다. 조리학과 교수나 요리연구가를 초빙해 주민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조리법을 제공할 것이다. 서울 친구들과 협의해 우리 마을에서 친환경으로 생산한 신선한 오미자, 더덕, 호박 등을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장터를 개설할 것이다. 꾸러미 사업도 하고, 팜파티도 열어서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농작물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우리 농민들의 땀과 진심을 보여줄 것이다. 하나씩 짚어보면 어려움도 너무 많다.
어쩌면 시작하지도 못하고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믿음직한 친구들과 순박한 이웃이 있다. 그래, 할 수 있다.
이한일
※ 필자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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