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난 때문에 이름도 없이 헛되이 죽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공직에 종사하고 서로 일상생활에 힘씁니다. 서로 질투에 찬 감시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법과 판사를 존중하고 특히 학대받는 사람을 지키는 법과 모두에게 수치를 가르치는 불문율에 유념하고 있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최초의 전사자들을 위한 국장에서 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국가를 위해 싸우자” “가족과 자녀를 위해 싸우자”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패전의 참혹한 피해를 상기시키거나 ‘적은 배신자, 악마’라는 식으로 공포, 증오를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가 싸우고 승리해야 하는 이유로 ‘가치’를 제시했다. 오직 아테네인들만이 이룬 가치는 바로 국가와 정치의 미덕이었다. 이것을 아테네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페리클레스가 찬양하는 아테네의 자산은 민주주의라는 법과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는 불완전하다. 아테네인의 진정한 미덕은 건조하고 딱딱한 법과 제도를 부드럽게 운영하고 더 나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었다.
페리클레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아테네가 이런 사회다’가 아니라 ‘이런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또는 지향해야 한다’라는 의미다. 그런 노력만으로도 아테네는 세상에 없는 모범도시라는 것이다.
지나친 미화일까?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끄럽다. 사회 지도층이나 조금이라도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에 뭔가 기여하는 사람을 찾고 돌보는 일’을 죽음도 아깝지 않은 가치로 인식한 적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갑질 논란, 미투 운동도 따지고 보면 학대받는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에 집착했던 결과이다.
페리클레스는 법을 존중하는 것 못지않게 수치(羞恥)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법과 제도만으로 굽은 것을 펴고, 울퉁불퉁한 곳을 고르게 할 수 있을까? 할퀸 상처와 파인 자국만이 남을 뿐이다. 페리클레스는 수치라는 불문율로 그것을 감싸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의, 이해를 내세우는 사람은 곧잘 법의 뒤에 숨어 목적을 관철한다. 수치라는 불문율이 실종된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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