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성공을 거둔 뒤 1870년대 후반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그간 위선적인 글을 써왔다고 자책했지만, 삶에 대한 회의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고뇌가 진짜 이유였다. 이후 종교적 인도주의에 심취해 금욕 생활을 했지만 절필이 계속되지는 않아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년) ‘크로이처 소나타’(1889년) ‘부활’(1899년) 등을 내놓았다.
무협·역사소설 작가 진융(金庸)은 17년 동안 소설 15종을 발표했다. ‘녹정기’ 신문 연재를 끝낸 1972년 48세 때 절필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거나, 작가보다는 언론인이자 평론가로 불리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요산 김정한(1908∼1996)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25년 동안 절필했다. 작가 스스로 ‘20년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왔다’고 했지만, 그 기간에도 발표하지 않았을 뿐 소설과 희곡을 썼다. 김승옥은 1980년대 초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을 연재하던 중 신군부의 검열에 항의하며 절필을 선언한 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출판사 편집주간, 대학교수 등으로 일했다. 2003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이듬해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을 냈다.
소설가 한수산은 1981년 5월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고문당했다. 신문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 내용을 문제 삼은 만행이었다. 풀려난 뒤 3년간 절필했고 1988년 일본으로 떠나 4년 뒤 돌아왔다. 소설가 김주영은 1989년 10월 절필을 선언했다. “내면에 더 이상 글을 써나갈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였지만 1년여 만에 집필을 재개했다. 절필 이유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작가 생활에서 은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절필이라면, 1970년대 중반부터 수필을 쓰지 않은 피천득(1910∼2007)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 바로 붓을 꺾어야 하지요. 그런데 쓰지 않으면 세상에서 잊히는 것만 같아서 전만 못한 글을 자꾸 써댄단 말이죠. 그러다 보면 글이 가치가 낮아지고 허위가 되고 수준 이하의 글쓰기를 되풀이하게 돼요.”(‘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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