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저커버그의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요즘 한국 사회에는 ‘미투’ 관련한 사과의 말이 홍수를 이루지만 공감보다 논란을 키우기 일쑤다. 누구는 ‘공개사과 리허설’ 의혹으로, 누군가는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의 조건부 사과로 역풍을 불렀다.

▷공개 사과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가령 ‘3R’원칙은 잘못을 반성하고(regret), 대책을 내놓고(react), 재발 방지를 통해 안심시키는 것(reassure)을 뜻한다. ‘절대로 사과를 변명으로 망치지 말라’는 격언도 있다. 기업에서 대형 악재가 터질 경우 리더의 대처에 따라 조직의 운명이 갈린다. 2009년 미국 도미노피자의 사과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당시 한 매장의 직원들이 피자를 만들며 역겨운 장난을 하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삽시간에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최고경영자 패트릭 도일은 형식적인 사과문 대신 발 빠르게 자신이 출연한 사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 반성의 진정성을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서 회사 매출이 더 늘어났다.

▷‘우리는 여러분의 정보를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정보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25일(현지 시간) 미국 영국의 유력지에 50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사태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자신의 친필 사인과 함께 실린 전면광고로 적극 진화에 나선 것인데 뒷북 대처란 지적이 나온다.

▷저커버그는 이번 파문의 초기 단계에서 침묵을 고수하더니 5일 만인 21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CNN 출연을 통해 첫 공개 사과를 했다. 이때 “페이스북이 실수했다”며 자사의 책임은 ‘실수’로 얼버무린 채 개인정보를 빼돌린 교수와 데이터 회사에만 화살을 돌렸다. 결국 사용자들의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온라인에서는 페북 탈퇴운동(#DeleteFacebook)이 확산되고 기업신뢰도는 추락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는 무엇일까. 자신의 잘못을 수용하고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 변명과 사족을 뺀 진심어린 사과. 바로 이런 사과를 겁내지 않는 것도 리더의 덕목일 터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공개 사과#페이스북#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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