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낸 책의 제목이다. 아버지(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곳곳에 묻어 있다. 처음엔 ‘아버지(dad)’라고 하려다 41을 제목으로 달았다. 아버지 부시가 41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부시는 종종 아버지와 함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마지막에 ‘From 41 & 43’이라고 표기한다. 자신은 43대 대통령이다.
“나는 42대였고, 이제 그녀가 45대입니다.”
2016년 5월 뉴욕 맨해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선 지지 유세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42대 대통령을 지낸 ‘올드보이’인 만큼, 새로 45대 대통령이 되려는 부인을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에선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유달리 몇 대(代)인지를 강조한다. 대통령제의 역사가 오래돼 전직 대통령 수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동시에 각 대통령 재임 시기를 하나하나의 역사로 분류해 기억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링컨은 몇 대 대통령?” 식의 퀴즈를 내고 그때 역사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대통령님’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3일 구속되기 전까지 비서를 통해 각종 성명을 내면서 꼭 마지막에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적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하면서도 그랬다. 굳이 17대라고 밝히는 이유를 참모들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라도 해야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했었다. 적폐이자 파렴치범으로 몰리며 헌정사에서 사라지는 건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탄핵으로 몇 대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한 18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세월호 관련 추가 의혹 조사 발표로 또 한 번 결정타를 맞았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늘로 구속된 지 딱 1년 된 18대 대통령의 흔적은 헌정사에서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더 남았으니 완전히 ‘소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17, 18대의 역사는 부끄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검찰이 먼지 털기식 수사를 했다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을 또 입에 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세월호와 관련해선 국민들 가슴을 시커멓게 태울 또 다른 건이 드러날까 겁부터 난다.
그렇다고 이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했던 2008년 2월 25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9년의 시간 자체를 부정하고, 거론하는 것조차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시간 역시 좋든 싫든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언젠가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끝난다면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낼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다가 퇴임 후 친구로 지내는 빌 클린턴, 조지 부시의 근황이 궁금해서 이들이 2014년 세운 ‘대통령 리더십 연구(PLS)’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최근에도 특별 좌담회를 갖고 자신들이 재임 시 왜 이런저런 결정을 했는지 토론하고 있었다. 이들도 그리 훌륭하기만 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클린턴은 섹스 스캔들로 탄핵 문턱까지 다녀왔고, 부시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그래도 이들의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기억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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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06:25:49
우리는 그저 북쪽에서도 다 때려잡고 남쪽에서도 다 때려잡는 가학성이 우수한, 머리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화자찬으로 날을 지새는 우수한 민족이다.
2018-04-01 05:05:20
역대 유래없이 권력의 개로 전락한 검찰, 경찰의 수사를 사실인 양 홍보하는 역대 유래없는 동아의 정치부장!
2018-03-31 12:34:35
기억하고 역사 교과서에 남겨야 한다. 부패와 퇴행의 시대였다고 확실하게 기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