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옷과 액세서리의 완벽한 조화. 도무지 나이가 믿기지 않는 생기 넘치는 얼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 1층에서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91·사진)를 만난 순간 ‘본연의 임무’를 잊고 엉뚱하게 건강 비결이 뭔지부터 물었다. 그러자 환한 웃음을 짓더니 “김수영의 여편네로 산 것이 행복해서 그런가?”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난 잡초야. 잡초가 제일 강하잖아.”
이화여대를 다녔던 김 여사는 1942년 문학 스승과 제자로 김 시인을 처음 만났다. 1949년 말 살림부터 차리고 이듬해 결혼한 부부는 아들 형제를 두었다. 그 과정에서 별거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삶과 문학의 끈끈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이비 시인이 많잖아. 한데 이 양반은 철저한 시인이야.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게 저력이야.”
시인은 한 달에 1편 정도밖에 못 쓸 만큼 고된 산고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이 나오기 전이면 폭음이나 머리를 빡빡 깎고 들어오는 등 자학을 했다. 시가 완성되면 시인은 아내를 불렀다. 김 여사의 역할은 최초의 독자로서 청탁한 곳에 보낼 것과 보관용 등 2부를 원고지에 정서하는 것. “구공탄 위에 밥이 끓고 있어도 즉시 내려놓고 스프링처럼 튀어가야 해. 못 기다리니까. 그 양반이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원고지에 거의 다 베껴 쓰다가 띄어쓰기가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야. 그래도 짜증 한 번 못 부렸어. 워낙 진지하고 엄숙했으니까.”
“그 양반은 똑같은 시를 쓰는 법이 없었어. 이전 작품보다 넘어서야 한다, 그런 엄격한 태도로 쓰니까. 그래서 그 시정신이 늘 새롭고 살아있는 거 아닐까.” 이어 그는 남편으로서도 “정말 멋있고 재미있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동아일보와의 남다른 인연도 들려줬다. “청탁은 늘 밀려 있었어. 그래도 동아일보가 늘 1순위야. 2순위는 ‘사상계’. 나머지가 기타 등등.”
50주기를 맞은 아내의 바람은 김수영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조명되는 것. “그 양반은 현실을 떠나서 시가 안 나와. 자연히 현실비판도 나온 거지. 그래도 어디까지나 그는 사랑의 시인이고, 생활인이었어. 철두철미한 절대 자유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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