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2일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취재차 방북한 기자들과 만나 내놓은 첫마디는 대남 유화 공세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 해군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도발사건을 농담조로 꺼내며 ‘그건 남측 주장이고 난 이렇게 당당히 서 있다’고 대놓고 빈정거린 것이다.
김영철의 발언은 북한의 취재 통제에 항의하는 우리 기자단에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느닷없이 김영철 입에서 나온 천안함 얘기에 우리 기자들도 기습을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예상 밖의 유연한 태도에 천안함은 더 따질 경황도 없이 넘어갔다. 그러고는 어제 노동신문을 내세워 “천안호 침몰사건은 남조선 보수패당이 조작해낸 치졸한 모략극”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철저히 계산된 ‘천안함 희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청와대는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했고, 국방부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얼버무렸다. 김영철이 평창 겨울올림픽 때 우리 땅을 밟기 전에 천안함 유족들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았던 정부다. 아무리 대화 국면이라지만 기습적 언동으로 눙치려는 북한에 한마디 유감 표명도 없이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크다.
김영철은 판문점 연락장교 출신으로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장을 지냈다. 남북회담에선 한껏 목청을 높이다가도 구걸하듯 납작 엎드리는 변화무쌍한 협상꾼이었다. 그런 김영철이 전면에 나서 펼치는 유화 공세에는 북한의 전형적인 기만전술이 숨겨져 있다. 현란한 입발림에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파격적 화해 손짓은 일순간 협박과 도발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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