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업의 일자리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4일 03시 00분


김용석 산업1부 차장
김용석 산업1부 차장
정부에 정책이 있으면 민간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정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면, 민간은 알아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중국 관료주의 병폐에서 나왔다는 이 말을, 요즘 정부 일자리 정책을 보면서 떠올리고 있다.

정부 일자리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조건 많이 뽑아라”일 것 같다. 기업에 청년 채용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주문한다. 동시에 기존 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은 제한하려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까지 더하며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정부 눈높이에서 ‘일자리 정책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노동운동가 출신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노총 출신 노동부 장관, 민주노총 출신 노사정위원장 등 정책 파트너를 맞으면서 기업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한 제조 대기업 인사·노무 임원이 전한 기업 분위기는 이렇다. “근로시간 단축하면 직원 수를 늘려야 하는데 야근·특근 수당 비율이 높은 실질 임금이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노조와 타협이 되지 않습니다. 계절에 따라 일거리가 들쭉날쭉하는데 고용을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차에서 수출 물량 채우자고 생산라인 조정했다가 파업까지 나지 않았습니까. 덜컥 사람 뽑는 건 두고두고 리스크가 됩니다. 해외 생산을 늘리는 대책에 마음이 가는 거죠.”

1일 본보의 22개 주요 그룹 인사·재무 책임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기업이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조건으로 ‘고용 유연성 강화’를 꼽은 것(6곳·주관식 중복 응답)은 이런 속내를 보여주는 결과다. 기업은 높은 비용의 구조조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한국은 137개국 중 정리해고 비용이 25번째로 높다는 성적표(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받았다. 최하위권인 노동시장 효율성은 청년 일자리 걸림돌로 꼽힌다.

이런 고민과 달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기업현장 방문 행보는 각 기업 투자·고용 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처럼 돼버렸다. 방문만으로 일자리가 팍팍 늘어날 리 없다. 기업들은 곤혹스럽다. “일자리는 결국 시장과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는 김 부총리의 말과 “정부와 대기업이 서로 할 일을 확인하고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최태원 SK 회장의 발언이 진실을 엿보게 해준다.

기업이 일자리 늘리기 대책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인력은 기업의 경쟁력 저하 요소다. 더 많은 일자리를 놓칠 수 있다. 기존 수출 제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지 못한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서비스업과 혁신기술 분야 규제를 완화하고 벤처기업 덩치를 키우는 방향이 될 것이다. 본보 설문조사에서 고용 유연성 강화에 이어 2∼6위를 차지한 답변은 규제 개선(4곳)과 경제 활성화(4곳), 기업 성장(3곳), 신규 투자 확대(3곳), 기업친화 정책 및 지원(3곳)이었다.

청년 실업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두고 정부는 기업을, 기업은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둘의 시선이 혁신성장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지 않고 엇갈리는 순간 많은 청년들은 기회를 잃고 있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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