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내실에는 흔들의자가 있었다. 그는 최순실이 관저에 들어오면 거기 앉았다.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이 배석했다. 최순실은 3인방으로부터 국정을 보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끔 바로 옆 침실에 들어가 쉬고 나왔다. 최순실이 결론을 내리면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도 이런 식으로 결정됐다.
최순실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 청와대의 국정 보고서를 전달받고 한 차례 관저에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공식 회의나 외부 행사가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렀다. 탄핵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렇게 1475일 동안 최순실과 함께 ‘관저 대통령’을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10년 전인 2003년. 국회의원이었지만 그는 의원회관 사무실에 거의 없었다. 정치부 기자였던 나는 그의 사무실에 갈 때마다 정호성과 비서관 2명밖에 볼 수 없었다. 늘 썰렁했다. 이듬해 한나라당 대표가 된 그는 역시 대표실을 자주 비웠다. 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이나 신사동 최순실의 미승빌딩에서 최순실과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다. 3년 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치를 때까지 몰랐다. 그리고 5년 뒤 대선을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몰랐다. 그동안 다른 기자, 어느 언론도 최순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다. 유력한 정치인이 긴 세월 은폐해온 음습한 배후에 무지했다. 완벽한 검증 실패였다. 반성한다.
국회도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회의 감시 및 견제 대상이다. 그래서 헌법은 국회에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권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2013년 2월 권좌에 오른 박 전 대통령의 국가 권력 불법 공유를 3년 넘게 막지 못했다.
당시 야당은 어렴풋이 낌새를 챘지만 정보력 부재로 그뿐이었다. 여당은 박 전 대통령의 꼭두각시였다. 청와대에 비판적인 김무성 의원 등 비박(비박근혜)계가 있었지만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진영에 밀려 맥을 못 췄다. 국정농단 추적 보도에 뒷북만 치던 국회는 민의에 밀리고 밀려 결국 2016년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다.
그보다 앞서 검찰은 어쩌면 헌정사의 비극인 대통령 탄핵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2014년 12월 이른바 ‘정윤회 문건’ 수사에서 청와대 관저 내실의 최순실을 밝혀냈다면 말이다. 문건의 정윤회 등 ‘십상시(十常侍)’ 중 최순실은 없었다. 하지만 전남편 정윤회 주변을 깊숙이 수사했다면 최순실이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형사처벌은 못 했더라도 최소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을 분리할 수는 있었다. 어떤 검사들에게는 살아있는 권력 중심부나 그 주변을 파헤치는 게 금기다.
또 청와대에는 관저 안 최순실을 알면서 모른 체한 대통령의 사람들이 있었다. 16개월째 구속 수감돼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최순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검찰은 믿지 않는다. 최순실을 방치해 국정농단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가 오늘(6일) 있다. 법의 심판은 그의 몫이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는 일은 언론, 국회, 검찰, 그리고 대통령의 사람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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