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있을까요?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혀 진실이 아니라고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술적 진실’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주인공이 하는 말은 서술적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원고나 피고가 하는 말도 서술적 진실입니다. 서술적 진실은 사건이나 사실이 아닌 감정, 가치, 해석, 소망의 산물입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에 드는 대로 말한 결과물입니다. 서술적 진실의 대척점에는 ‘개인사적 진실’이 존재합니다. 개인사적 진실은 실제 일어난 일을 말합니다.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은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상당 부분 다릅니다. 그래서 두 진실은 갈등하고 충돌합니다. 비유하자면, 조선시대 왕들이 역사 기록에 뛰어난 임금으로 남기 위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본 서술적 진실이고, 사관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왕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기록한 것은 개인사적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요? 법이나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는 개인사적 진실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정신분석의 입장은 정반대로 다릅니다. 분석은 진실은 알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분석가는 스스로 사실과 사실이 아님을 구분하고 판단하고 처벌하는 ‘분석적 법관’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석가에게는 서술적 진실도 진실이고 개인사적 진실도 진실입니다. 정신분석의 목적은 진실을 알아내서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최종적으로 분석을 받는 사람, 피분석자의 삶의 몫입니다. 분석가는 피분석자가 옳고 그름을 떠나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 사이의 간격을 줄여 나가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면, 분석 초기에 피분석자가 서술한 아버지는 자신을 학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분석이 진행되면서 억압되었던 기억이 돌아오면 넓게 보게 됩니다. 새로 보이는 아버지는 눈비를 맞으며 열심히 일해 자식들이 대학까지 졸업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애쓴 분입니다.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 사이의 간격이 줄어든 겁니다. 마음이 열리면 일상을 사로잡고 있던 아버지와의 갈등이 풀리고 마음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정신분석이 서술적 진실을 출발점으로 개인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은 험난합니다. 피분석자의 마음 한구석은 추가적인 진실을 찾으려 나섭니다. 동시에 다른 구석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저항과 방어를 피하고 돌파하며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의 통합을 꾀하는 것이 분석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피분석자의 무의식적 전이(轉移)에 분석가는 억압적인 방해꾼으로, 가끔은 자애로운 지지자로 등장합니다. 분석가의 역전이(逆轉移)에서도 피분석자를 부담스럽게, 때로는 친근하게 느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역전이 상태에서도 분석가는 피분석자의 말을 중립적으로 포용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들어야 하니 힘든 일입니다.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에 ‘기억’이라는 요인이 더해지면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인간의 기억은 주관적이어서 믿을 수 없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꼭 전부도 아니고 늘 맞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기억이 이기심, 탐욕, 자기방어로 포장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다른지는 오래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일본 영화, ‘라쇼몬(羅生門)’이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같은 사건을 등장인물들(산적, 무사, 무사의 부인, 나무꾼)이 각자 다르게 서술해 관객을 혼돈으로 몰아갑니다.
마음의 상처와 얽히면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방어라고 하는 심리 기제가 왜곡의 주동자입니다. 기억의 왜곡은 의식적인 거짓말 수준일 수도 있으나 흔히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까맣게 모르게 일어납니다.
말 많고 역동적인 세상은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며 ‘○○운동’, ‘○○청산’, 또는 ‘○○주의’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과거에 개인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목표 또한 숭고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내재된 논리 체계를 쉽게 받아들이면 서술적 기억이 개인사적 기억을 압도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논리의 영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편집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치권은 통상적으로 화려한 수사(修辭)와 어법을 동원해 듣는 이의 마음을 조종하고 자신에게도 ‘정의로움’이라는 최면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확실한 근거로 믿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미 밝혀진 기억의 취약성을 인정한다면 확신보다는 회의(懷疑), 맹신(盲信)보다는 의심이 사회적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굳게 믿는 것도 되돌아보고 검증하려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확신은 위험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 누군가가 행사한 확신의 결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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