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스파이 전쟁(Spy Wars)’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으로 러시아와 서방 간 신냉전 분위기가 조성되면서다. 냉전의 주요 형태인 정보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스트롱맨들이 정보기관 역량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보강국인 미국과 러시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중국 시진핑 주석은 ‘정보 굴기’를 꿈꾸고 일본 아베 신조 총리도 일본판 중앙정보국(CIA) 설립을 노리고 있다.
신냉전 시대에 스트롱맨들이 정보력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적대국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정보를 수집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서방 25개국과 러시아 간 대규모 외교관 맞추방도 정보전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각국의 대사관은 주재국 내 정보 활동의 허브이며 외교관이 공개된 스파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 후 첫 일정으로 CIA를 방문한 것도 정보력에 얼마나 큰 방점을 두는지 보여준다. 그는 그곳에서 CIA에 대한 1000% 지지를 표명했다. CIA와의 갈등 불식을 위한 행보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대통령 당선 후 처음 접한 CIA의 정보 역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흥분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근 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전격 기용한 것도 정보력 확충과 무관치 않다.
한반도는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스파이 전쟁의 각축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눈과 귀인 CIA가 치열한 대북정보 수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폼페이오가 지난해 5월 CIA 내에 북한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코리아 미션센터(KMC)’를 개설하고 센터장에 한국계 앤드루 김을 임명한 점은 대북 정보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전격 수락한 것도 CIA 북한정보 보고의 영향이었다는 후문이다.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폐쇄적인 북한에 대해서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우위에 있다. 북한의 인민무력부(MGB)가 KGB를 모태로 창설됐고, 1990년대 한소 수교에 따른 최악의 북-러 관계에서도 양국 정보기관 간 협력은 변함없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부(FSB) 장관을 지낸 바 있고, 2000년 취임하자마자 역대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사실도 러시아가 미국을 제치고 제일 먼저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소 냉전이 정점에 이른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요격하는 ‘스타워즈(Star Wars)’를 선포했다. 이에 소련은 사력을 다해 맞섰지만 과도한 군비 지출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등극했다. 이제 스트롱맨들은 21세기형 스타워즈인 ‘스파이 워즈(Spy Wars)’로 한판 승부를 겨뤄야 할 운명이다. 이 전쟁에서는 승자만 있을 뿐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대한민국은 어떨까. 4월 남북 및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북한은 우리가 껴안아야 할 동포이면서도 분단의 다른 편에서 대치 중인 나라다. 국정원은 대북 협력에 필요한 정보 활동과 함께 간첩을 색출하는 방첩 활동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과감하게 적폐를 청산하되 탄탄하게 정보 근육질을 가꿔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특정국에 편중되는 정보 편식을 경계하고 주변국과 다층적 정보 공유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사권 폐지 문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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