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세계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가장 오래된 책으로 프랑스에서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 간행·이하 직지·사진)의 첫 국내 전시를 위해 ‘압류면제법’ 발의 서명을 받으려 최근 접촉한 같은 당 의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법은 해외 문화재를 들여와 전시할 때 압류·압수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인데 일부 시민단체가 법안에 반대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칫 문화재 환수를 반대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우려스럽다”며 서명을 거부했다는 것. 그가 언급한 선거는 두 달 뒤 6·13지방선거와 2년 뒤 국회의원 총선거를 말한다. 노 의원 측은 한 달 넘게 발의 정족수(10명)도 못 채우다가 12일에야 법안을 가까스로 발의한다.
표를 먹고 사는 국회에서 선거는 정언명령(定言命令)과도 같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법은 선거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게 학계와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앞서 정부는 올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大)고려전’을 열기로 하고, 프랑스 일본 대만 정부에 직지와 고려불화 등의 전시대여를 요청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대전지법의 쓰시마 불상 판결을 거론하며 “압류면제법이 제정돼야 유물을 안심하고 빌려줄 수 있다”고 회신했다. 대전지법은 2012년 한국인 절도단이 훔친 불상을 돌려 달라는 일본 쓰시마 사찰의 요구를 거부하고 충남 서산 부석사에 넘길 것을 결정했다.
정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이 민주당 박경미 의원과 협의해 압류면제법 발의를 추진했으나,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2월 초 입법을 포기했다. 국회가 여론 눈치만 살피느라 130년 만의 직지 귀향(歸鄕)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노 의원 역시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원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었다. 국회 교문위와 본회의 통과도 선거를 앞두고선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노 의원은 “언론 보도를 접한 뒤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하려면 이 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 측은 법안 서명을 받기 위해 국회 교문위 소속 의원들은 물론 직지를 대표 지역 문화재로 홍보하는 청주·충북지역 국회의원들도 설득했다. 그러나 교문위 위원 28명 중 고작 3명만 서명에 동참했을 뿐이다.
문화재 환수 논란이 국제 문화교류에 차질을 빚자 미국과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세계 각국이 압류면제 조항을 뒀다. 우리 국회도 말로만 문화강국을 외치지 말고, 직지 감상을 갈망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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