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중국 시장의 대폭 개방을 위한 ‘4대 중대 조치’ 가운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수입 확대 계획을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무역흑자를 목표로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홍콩 밍(明)보는 “시 주석이 흑자를 적자로 잘못 말했고 중국중앙(CC)TV에 ‘해당 부분을 재방송하지 말고 편집보도에도 사용하지 말라’는 통보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전체적으로는 세계 발전에 기여하려는 중국의 책임, 발전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연설이었다. 시 주석은 “중국의 발전이 누구도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국제 체계를 전복하지 않을 것이다. 세력 범위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지정학 게임의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을 것이며 폐쇄적이고 다른 이를 배척하는 좁은 울타리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각국이 선택한 사회제도를 존중해야 한다. 현대화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정확한 발전 방향을 찾아 부지런하게 달리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의미심장했다.
중국이 선택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기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대국외교’의 저자인 왕판 중국 외교학원 부원장은 11일 베이징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중미 경쟁은 상대를 약화시키는 ‘악성경쟁’에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우세를 찾고 발전시키는 ‘양성경쟁’으로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기여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 주석의 연설은 ‘신흥 세력과 기존 지배 세력 사이에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받을 만했다.
하지만 좀 더 곱씹어보면 시 주석의 연설은 세계 전체보다 미국을 겨냥했다. 시 주석은 사실상 미국을 ‘폐쇄, 낙후, 후퇴’로, 중국을 ‘개방, 진보, 전진’으로 대비시켰다.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하락하고 중국의 전체적인 힘이 강해졌으며 미국식 패권이 세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했다”(왕판 부원장)는 중국의 근본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왕 부원장은 미국이 북한, 중일 해양 문제, 대만, 남중국해, 동남아 지역 문제에서 중국을 계속 성가시게 하면 중미 관계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 역시 “변혁을 배척하고 혁신을 거절하면 누구든 역사에 의해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등 주변 국가들엔 “‘개방의 중국’과 ‘폐쇄의 미국’ 가운데 선택하라”는 엄포로도 들렸다.
무역흑자를 무역적자로 말한 시 주석의 실수도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선전포고에 응전하려는 생각을 의식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일지 모른다. 왕 부원장은 “대국외교는 대국을 겨냥한 외교가 아니라 대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외교”라고 밝혔다. “자신의 이익을 과도하게 주장하면 국제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도 지적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해당되는 말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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