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줘’는 김광석이 동물원을 떠나 독집을 낼 때 제가 만들어 준 노래입니다. 너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데, 그 이유를 몰라서 도움이 되지 않고, 그래서 내가 슬퍼진다는, 하지만 너를 사랑하기에 꼭 너의 마음에 이르는 길을 찾겠다는 내용입니다. 말이 쉽지 매우 어렵더군요. 광석이도 마음을 말해주지 않고 떠나갔죠.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을 알려고 애써도 늘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제 마음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의도하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주곤 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외부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더 많죠. 어린 시절 사랑과 이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며 품게 된, 완벽한 사랑과 이해를 얻는 환상이 그런 함정을 파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작은 불만족에도 극단적인 실망과 분노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상처를 받기 위해 파는 가장 흔한 함정은 초콜릿 과자 선전처럼 ‘사랑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환상입니다.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 땐, 그 이유가 내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고의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죠. 당연히 화를 내게 됩니다. 당하는 상대방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죠.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비교적 예측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레퍼토리는 무척 많고 복잡해서 예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아이같이 굴면서 말하지 않아도 엄마처럼 자기 표정만 보고 척척 맞춰달라고 하면 난감해지죠. 그런 기대와 요구는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함께 사는 것 같은 공포를 유발합니다. 반복적으로 비난을 받으면 분노하게 되고, 이는 전쟁 혹은 결별로 이어지죠.
더 고약한 함정은 ‘이중속박’입니다. 이중속박이란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불만족스러운 상대방의 반응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국이 참 맛있다고 하는데, 생선은 맛이 없다는 것이냐며 실망하고, 생선도 맛있다고 하면 구걸해서 칭찬받기 싫다며 마음의 상처를 받는 아내처럼 말이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고, 사과를 하면 이것이 사과로 해결될 문제냐며 마음의 상처를 더 받는 것도 이중속박의 예입니다. 어떻게 해도 비난을 받는 것이 반복되면 상대방도 화를 내게 되고, 자신은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죠.
이중속박의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가치와 노력을 정당하게 인정해주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런 예상과 태도는 상대방을 비난하게 만들고, 그 결과 두 사람은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를 탓하게 됩니다.
나의 상처들이 내가 파놓은 함정의 결과물들이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빨리 그것을 메우고, 마음을 언어로 표현해서 내 마음으로 이르는 길을 넓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죠. 내가 늘 그 함정에 빠져 가해자의 누명을 쓰고 있다면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합니다. 상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할 수도 있죠. 그러나 그 고통은 악순환을 끊고 서로의 마음에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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