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에세이]나와 너 사이, 저항이 ‘0’이라면 좋을 텐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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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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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지난 일주일 동안 강화도 곳곳을 걸어 다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고인돌유적지였다. 넓적하고 큰 별난 돌들이 참으로 별나게 서 있다. 고인돌의 아랫돌 두 개는 나란히 그리고 비스듬히 윗돌을 받쳐주고 있다. 고인돌은 표면적의 저항과 힘의 균형을 고려해 세워져 있다. 그 옛날 사람들이 돌덩이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에너지를 아끼는 지혜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과학의 난제 중 하나는 에너지 손실(저항)을 막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휘발유가 만들어내는 화학 에너지의 70%가 손실된다. 차의 내외부 마찰과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전기 역시 많은 손실이 발생한다. 전기는 대개 물질을 통해 흐른다. 스위치가 켜지면 벽의 전선을 따라 전기는 빠르게 흐르지만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전기는 전자의 운반으로 흐른다. 그런데 전자들이 물질의 원자들과 충돌한다. 이때마다 전자들은 에너지를 잃는다. 소위 저항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전력망은 전력의 최대 7%를 잃는다. 독일의 전력망 같은 경우 전기에너지 중 약 4.5%는 발전소에서 각 가정에 전달되는 가운데 없어진다.

현대물리학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상온에서 전기 저항을 0으로 해 전기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초전도체이다.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도, 자기장의 세기 및 전류밀도 등 세 가지 기본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특히 극저온 상태로 만들려면 비싸고 부피가 큰 장비가 요구된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초전도체를 찾는 게 중요하다. 한편, 저항이 0이라는 것과 저항이 작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최근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별난 물질에서 전자들이 별난 상호작용을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극저온에서 ‘YPtBi’(Ytterbium-PlaTinum-Bismuth·이터븀-백금-비스무트의 원자 비율은 1:20:1) 물질을 조사했다. 약 2년 전쯤 YPtBi가 초전도체임이 알려졌는데,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고체가 아닌 비물질에서 나타난다고 알려진, 묘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전자들의 상호작용은 양자적 성질인 ‘스핀’으로 불린다. 여태껏 초전도체의 스핀은 특정 상수 값을 보였는데, 이번엔 좀 더 높게 나타났다. 스핀은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안으로 굽히느냐 혹은 밖으로 펼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생각하면 이해된다. 선수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동일하기 때문에 팔을 안으로 굽히면 속도가 빨라지고, 밖으로 펼치면 느려진다. 초전도체에서 그동안 여러 전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보인 스핀이 이번엔 별나게 달라졌다는 게 핵심이다.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다. 꿀벌, 돌고래, 청새치, 참치 등에는 자성이 있어 세상을 감지할 수 있다. 도시의 소음과 극지방의 오로라 그리고 인간의 심장, 뇌에서도 자기장이 방출된다. 이들의 자성은 지구가 생명이 살기에 적절한 온도이기에 가능하다. 만약 이들을 이루는 원자의 온도를 변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기체가 액체가 되고, 고체가 되는 것처럼 상태를 변화시키면 물질의 성질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철을 고온으로 달굴 경우 자석의 힘이 사라지거나, 상온의 금속을 극저온 처리할 경우 전기가 잘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온도가 올라갈 경우 원자의 격자진동 에너지가 커진다. 원자들이 격렬히 진동을 하는 만큼 전자가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고 원자에 많이 충돌(저항)한다. 이 때문에 전자들의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는 현상이 생기는데,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할 경우 본체가 뜨거워지는 것과 같다. 저항으로 전자들이 방해를 받으면 전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물체를 낮은 온도에 둘수록 일반적으로 저항은 줄어든다. 이러한 극저온의 세계를 잘 이용한다면 의료뿐 아니라 수송, 반도체, 컴퓨터 분야에 획기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저항이 없다면 전자들은 쌍을 이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즉 방해받지 않고 정연하게 흐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극저온은 섭씨 ―150도에서 ―273도이며, 이 중 가장 낮은 섭씨 ―273도는 절대온도 0K다.

이번 연구결과의 의미는 초전도체의 가능성이 더욱 다양해졌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며 전자의 스핀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또한 스핀을 이어주는 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별난 물질에서 드러난 별난 특성이 초전도체에 존재한다는 건 전기저항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한다. 과학은 별남과 다른 가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속설이 증명된 순간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저항#에너지 손실#현대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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