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광현]두 영웅의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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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 보름 전 의정부 참찬에 발탁된 보재(溥齋) 이상설은 늑약이 아직 고종 황제의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차라리 황제가 죽음으로써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의 기개는 높았다. 그는 1907년 이준 이위종과 함께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돼 열강 대표를 상대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 약소국 특사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냉담뿐. 이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한 뒤 1910년 강제합병으로 치닫는다.

▷궐석재판에서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상설은 간도, 하와이, 상하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국의 군대 해산을 바라본 안중근 역시 망명길에 올라 간도를 거쳐 1909년 의병활동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 두 애국독립투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이상설에 대해 “재사로서 법률에 밝고 필산(筆算)과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 애국심이 강하고… 동양평화주의를 친절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평을 남겼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에서 ‘일제 스파이의 대부’로 불리던 식민지 조선의 첫 헌병대장 아카시 모토지로의 비밀 보고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는 “안응칠(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스승이자 사건 배후는 이상설” “안응칠이 가장 존숭(尊崇)하는 이가 이상설”이라고 언급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유학자였지만 이상설은 화장하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망국의 신하로 묻힐 조국이 없고 제사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요즘 밖으로는 구한말을 연상시킬 만큼 나라가 긴박하고 안에서는 혼돈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선생의 기개와 애국심이 그리워진다. 22일이 선생의 101주기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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