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핵·미사일 실험 중단”… 비핵화 수순인가, 핵보유 선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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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고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김정은은 20일 열린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의정보고 형식을 통해 “핵개발 공정이 모두 진행되었고 운반타격수단 개발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돼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됐다”며 “이제는 그 어떤 핵 시험과 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북부 핵시험장도 사명을 끝마쳤다”고 밝혔다. 노동당은 이어 만장일치로 4월 21일부터 핵·미사일 실험 중지, 핵실험장 폐기를 결정했다. 외형상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낙관만 하기는 힘든 복잡한 함의가 담겨 있다.

노동당 발표문은 “지난 5년간 추진해온 핵-경제 병진노선이 승리를 거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며 핵실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개발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핵보유국을 자처하면서 비핵화 협상을 핵 군축 협상으로 포장할 것이라는 점은 수년 전부터 예상된 시나리오다. 특히 노동당이 비핵화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핵 위협을 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핵보유국들의 전형적 주장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물론 북한의 발표는 앞으로 비핵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계단 중 하나를 자진해서 디딘 것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노동당 발표문은 당과 국가의 총력을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모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 또는 수정할 의향을 밝혔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5년간 추진해온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 핵무장 완결을 강조한 것이라면 이는 청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런 점을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의 의도는 ‘비핵화 협상은 핵보유국으로서 군축 차원에서 응하는 것’이라고 미리 쐐기를 박음으로써 자신이 쥔 패의 값어치를 높이려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실 핵실험 중단이나 핵시설 폐기 선언은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 10·3 불능화 합의 등에 따라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지만 이 모든 것은 쇼로 판명됐고, 2013년 공개적으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핵폐기(CVID)가 다가올 릴레이 정상회담의 목표이며, 그것은 결코 타협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김정은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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