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미국 명문여대 웰즐리대에서 졸업식을 앞두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퍼스트레이디가 축사를 하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 “남편이 대통령이라고 연단에 설 수 있냐”며 ‘자격’을 문제 삼은 것. 그 주인공이 바로 바버라 부시 여사.
▷그러나 부시 여사는 여유 있는 미소로 졸업식 연단에 올랐다. 이어 “오늘 청중 가운데 나의 발자국을 뒤따라 대통령의 배우자로 백악관에 들어갈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면서 이 한 마디를 덧붙여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켰다. “그가 잘되길 바랍니다(I wish him well).” ‘여성 대통령’의 소망을 담은 연설에 환호가 쏟아졌다. 자신을 반대한 학생들에게 내심 불쾌할 법도 하건만 되레 정치 명문가를 이끈 여성다운 품격과 기개를 보여준 셈이다.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부인,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어머니.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뒤 “역대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라는 평가와 더불어 추모 열기가 뜨겁다. 21일(현지 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열린 장례식에서는 유독 가짜 진주목걸이에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 가짜 목걸이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국민 할머니’를 추모하는 차림새였다.
▷미 전역에 생중계된 장례식에 4명의 전직 대통령과 4명의 퍼스트레이디가 함께했다. 남편과 아들 부부를 비롯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부부, 현직 퍼스트레이디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 미 언론은 전직 대통령도 아닌 퍼스트레이디의 장례식으로서는 이례적이라며 “서로 다른 정당의 전직 대통령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소개했다. 두 명이나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우리에게는 부러운 장면이다. 백악관 경호실은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코드네임을 붙인다. 부시 여사의 코드네임은 ‘tranquility(평온)’. 그는 대통령 남편의 권력을 빌린 요란한 대외활동이 아니라 다정하고 소박한 퍼스트레이디로 미국인의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