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카메라 두 대만 들고 하노이로 떠났다. 촬영할 주소지를 찾아갔는데, 생각한 것보다 너무 작았다. 상상한 벼룩시장은 광장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구남친, 구여친에게 받은 선물을 되팔고 한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실제는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형! 벼룩시장이 너무 컸으면 실망했을 것 같아.”
“작아도 너무 작다.”
다음 날 시장에 가자 입구에는 ‘heartbreak market(결별 시장)’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하트브레이크 마켓이라니, 캬! 이름 죽인다.’ 이름에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다. 그는 작은 소품이랑 머그잔 그리고 인형까지 여러 물건을 펼쳐두고 있었다.
“이 물건 모두 여자친구에게 받은 거예요?”
“아니요. 저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매번 짝사랑만 했거든요. 짝사랑하면서 여자친구에게 주려고 샀던 선물인데 한 번도 못 줬습니다. 모두 거절당했거든요.”
재밌을 거라는 상상은 무너지고, 어느새 우리는 진지한 사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시장의 창시자 ‘탕’이라는 청년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벼룩시장을 기획하게 됐나요?”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그 물건만 봐도 마음이 아프잖아요. 그런데 그 물건을 버린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물건으로 좋은 일도 하고, 사랑을 또 한 번 추억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우리가 한국에 가서 이런 시장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저도 한국에 1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때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여자친구 아버지가 집으로 초대하시더니 소주 한 잔 따라주시면서 당신께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지금이라도 저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여기 이 편지가 그때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예요.”
그 편지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5000동(약 250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우리나라는 이별 범죄로 골치가 아프다. 사랑도 서툴지만 이별하는 방법도 잘 몰라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이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시장을 경험하면서 이별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하노이를 떠나며 우리는 결심했다. 서울에 가서 ‘heartbreak market’을 연다. 구남친 구여친의 물건을 파는 방송 쇼도 만들고, 가을에는 이별 노래 전문 발라드 가수를 모두 모아 이별한 사람들을 위한 축제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