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완전한 비핵화’ 새 역사, 이제 첫 페이지 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8일 00시 00분


6·25 終戰선언·교류협력 확대는 비핵화 조건부여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어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정상회담 결과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완전한 비핵화’ ‘핵 없는 한반도’를 명시했다. 그러면서 남북은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올해 안에 6·25전쟁의 종전(終戰)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기존 2007년 10·4정상선언에 명시된 종전선언 추진의 시한과 3개 또는 4개 참여 국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주체에 대해선 여전히 모호하게 남겨뒀다.

김정은은 어제 오전 판문점 북측 판문각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와 군사분계선(MDL)에서 문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눈 뒤 MDL을 한걸음에 건너왔다. 할아버지 김일성부터 3대를 통틀어 MDL을 넘은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이다.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는 김정은 말대로 남북이 긴장과 갈등에서 벗어나 진정 평화의 시대를 실질적으로 여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였던 ‘완전한 비핵화’가 명문화됐지만 이를 ‘남북 공동의 책임’으로 뭉뚱그리는 등 원칙적이고 선언적인 문구에 그친 것은 아쉽다.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인지도 불분명하다. 아울러 선언은 “남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달 초 우리 방북 특사단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엔 그런 간접적 의사 표명을 남북 선언에 담은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조건부 비핵화’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육성으로 ‘비핵화’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회담에선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분명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한 달여 뒤 이어질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겼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봐야만 알 수 있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은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변국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두 정상은 앞으로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해 수시로 논의하기로 했으며, 다음 정상회담은 올가을 평양에서 열기로 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에 명시된 서울 답방은 이번에도 무산됐지만, 적어도 가을까지는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로드맵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제 오후 실무진이 합의 문구를 다듬는 사이 두 정상은 판문점 내 도보다리에서 산책을 겸해 30분가량이나 둘만의 ‘벤치회담’을 가졌다. 이 같은 소통의 기회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고히 하고 평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기를 기대해 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군사적 긴장 상태와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몇 가지 합의를 이뤄냈다.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지하고,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DMZ 내부의 초소나 중화기를 빼는 등 비무장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거론하지 않은 채 남북 간 군사회담으로 넘겼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은 북한 지도자로선 최초로 우리 국군 의장대를 사열했고, 문 대통령은 북한군 수뇌부의 거수경례를 받았다. 여전히 국제법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는 상대국 원수를 향해 양측이 예우를 갖춘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전쟁이 남긴 깊은 상흔은 아물지 않았다. 앞으로 전후 처리 문제와 경계선 획정 같은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두 정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는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이 문제는 이미 10·4선언에서 합의돼 우리 사회 내부에 ‘NLL 무력화’라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섣불리 접근해서 서해 5도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 합의에는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올해 아시아경기의 공동 참여, 8·15광복절 이산가족·친척 상봉 등 다양한 교류 협력 행사도 포함됐다. 하지만 남북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하고 1차적으로 동해선 경의선 철도와 도로의 연결 보수공사를 위한 대책을 취하기로 한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국제적 대북 제재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10·4선언은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백두산 관광 사업 추진 같은 북한에 주는 긴 ‘선물 목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남북 교류 협력의 확대나 종전선언 등은 어디까지나 비핵화 완수를 전제로 한 조건부여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비록 기대에는 좀 미흡하더라도 새로운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쓰기 위한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듯 새 역사의 출발이 될지, 아니면 한바탕 쇼에 그칠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진정성, 특히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신속한 실천 의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성패는 앞으로 전개될 한 달여간의 국제 외교전에서 드러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북한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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