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본의 아니게 옆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 봄비가 오고 나서 벚꽃이 지고 말았다고, 영 서운하다는 내용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봄을 놓쳤다. 저 투덜댐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도 그럴 것이 꽃구경할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땅에는 떨어진 벚꽃잎이 가득이다. 요즘 들어 더욱 귀해진 봄은 쏜살같이 왔다가 곧 사라질 예정이다.
봄이 아쉬운 분들을 위해, 봄비를 대신한 변명을 해드리고 싶다. 그래서 저 유명한 이수복 시인의 ‘봄비’를 가져왔다. 교과서에 실린 탓에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이 작품은 1969년 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발표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읽어보면 봄비를 바라보는 서정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지만, 영 변하지 않는 마음과 계절과 감정이 있다고나 할까. 이렇게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진리’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봄비의 진리를 살펴보자. 봄비가 그치면 풀빛이 짙어 올 거라고 시인은 말한다. 봄비가 내린 덕에 보리밭길은 더욱 푸르러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는 꽃, 피는 꽃, 좋은 봄비, 원망스러운 봄비, 다가올 녹음까지 다 합해야 봄이다. 사실 시인은 봄에 빗대어 인생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는 날, 오는 날, 고단한 날, 시련까지 모두 다 같이 모여 있는 게 우리네 삶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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