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선희]어벤져스의 흥행을 바라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0일 03시 00분


장선희 문화부 기자
장선희 문화부 기자
“한마디로 태풍이 오는 거죠. 맨몸으로 거대한 비바람을 맞닥뜨리는 심정이랄까요.”

25일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맞이하는 한 영화 관계자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하필 어벤져스 개봉에 맞물려 애지중지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 그는 “그나마 몇 개 되지 않는 상영관이라도 잘 지켜냈으면 좋겠다”며 소박한(?) 바람을 나타냈다.

요즘 극장가는 ‘어벤져스 천하’다. 예매량만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최초로 100만 장을 넘겼고, 개봉 5일째 관객 400만 명 이상을 유치하며 무서운 속도로 흥행 중이다. 영화 팬들이 모인 한 커뮤니티에서는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22종 영화 포스터를 며칠에 걸려 겨우 모았다’거나 ‘큰 멀티플렉스 아이맥스관의 로열석 표를 구했다’는 의기양양한 자랑 글이 넘쳐난다.

사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실망감이 컸다. 아이언맨과 블랙 팬서, 캡틴 아메리카 등 개별적으로도 이미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히어로 23명이 한번에 등장한다며 기대감을 잔뜩 높여놨던 탓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히어로들의 통쾌한 영웅담이라기보다는 초지일관 빌런(악당)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악당의 변’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게 오히려 ‘마블의 힘’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시점에 ‘악당’이란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내드는 과감함이라니….

마블의 독창적이고 과감한 시도는 국내 관객들에게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사이트 모조를 살펴보면 마블은 전 세계 시장 중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에서는 어벤져스의 흥행에 또다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터져 나온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사전 수요 조사 등에 따라 시장 논리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같은 시기 맞붙은 중소 영화들은 관객에게 선택권조차 주지 않고 시장 논리 운운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맞선다.

올 4월까지 개봉한 영화들로 눈을 돌려본다. 안타깝게도 “극장에 가도 별로 선택할 만한 한국 영화가 없었다”는 게 관객들의 말이다. 그나마 공포영화 ‘곤지암’ 정도가 1인칭 시점에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한 독특한 시도로 10, 20대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을 뿐이다. 얼마 전 CGV리서치센터가 “한국 영화시장이 본격 정체기에 진입했다”는 암울한 분석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범죄, 액션 등 천편일률적인 소재가 핵심 관객층인 ‘2030세대’의 외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내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4’의 거대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더 강해진 어벤져스의 귀환에 한국 영화들이 잊혀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재의 다양성 확보 등 한국 영화의 도약이 필요한 때다.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어벤져스 천하#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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