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최근 한 가지 큰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다. 과연 어디서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열릴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몽골에서 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몽골 사람이지만 그동안 북한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함이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갑자기 북한과 몽골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한류 드라마를 처음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지금 기억으로 ‘모래시계’ ‘상도’ ‘첫사랑’ ‘대장금’ 등 여러 드라마가 몽골에 전파되면서 몽골인들은 한류에 대해 사랑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류 드라마가 좋아서 드라마에 나온 스타일과 유행을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사랑은 유효하다. 필자도 한류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더 좋아하게 돼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 당시 몽골에서 ‘허준’ ‘대장금’ 등 한국의 전통 의학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서 한의학이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곳곳에 한의원 간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무렵 친언니가 아파서 유명한 한의원에 입원했다. 한의원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을 봤는데,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를 보고 한의사가 매우 좋아했다. 언니가 입원한 동안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선생님은 북한 출신이었다. 2008∼2014년 몽골은 북한에서 대규모로 인력을 공급받았고, 경제가 2014년부터 급격히 나빠지면서 더 이상 근로자를 받지 않았다.
지금도 근로계약이 끝난 북한 근로자들은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들처럼 불법 체류자로 남은 사례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몽골에 체류 중인 북한 사람들은 자신이 북한 사람이란 것을 숨기거나 남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런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은 북한 출신 의사들이 자기 정체를 알리지 않고 환자를 치료했으며, 환자들은 의사를 남한 사람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심정이 힘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 한의사와의 추억 중 하나는 그분 집에 들러 먹었던 평양냉면이었다. 남한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그런 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몽골에서 북한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몽골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건설현장, 지하자원 발굴 등에서는 아직도 그들이 일하며 급여의 90%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 이들 이외에도 몽골에는 북한 유학생들도 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몽골과 북한은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 지도자들은 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같은 해 12월 울란바토르에서 혁명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러시아 이외의 다른 나라들로부터는 인정받기 어려웠고 이를 인식한 몽골인들은 1924년 독립을 쟁취해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1990년에는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를 잡았다.
북한은 1948년 몽골을 독립국가로 인정한 두 번째 국가다. 그때부터 몽골과 북한의 친밀한 관계가 시작됐으며 6·25전쟁에서도 북한을 응원하며 전쟁 물자 등 많은 지원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고아가 된 많은 북한 아이를 몽골에서 수용했다. 올해 들어 몽골과 북한이 수교 70주년을 맞아 많은 교류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몽골과 남한은 올해 수교 28주년을 맞는다. 북한과 몽골의 친밀한 관계는 1990년 이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다른 국가에 비하면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몽골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 중에서 모든 사람이 예상하기 힘든 나라였다. 몽골이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과 몽골의 남다른 인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은 장소가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 세계 평화와 세계인들이 행복할 수 있는 현명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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