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광표]청와대 미술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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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독일 나치 정권은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몰수했다. 나치 이데올로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 나치 관계자가 이 그림을 빼돌린 덕분에 유대인 금융가에게 넘어갔다. 소장자는 1939년 나치의 눈을 피해 암스테르담을 거쳐 뉴욕으로 그림을 망명시켰다. 이 그림은 탄생 100년이 되던 해인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8250만 달러에 일본인 기업가에게 팔렸다. 당시 미술경매 세계 최고가였다.

▷미술은 종종 권력에 의해 부침을 겪는다.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본관 국무회의장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를 걸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이 그림을 떼어 냈다. 김대중 대통령 말기부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박영율의 소나무 그림 ‘일자곡선’을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좌석 배치를 바꾸다 보니 대통령의 자리와 그림의 위치가 어울리지 않아 ‘일자곡선’을 커튼으로 가렸고 문재인 정부에선 ‘일월오봉도’로 바꿨다.

▷청와대가 9일부터 청와대 사랑채에서 소장 미술품을 전시한다. 본관에 걸어 놓은 전혁림의 ‘통영항’, 대통령 집무실에 걸려 있는 손수택의 ‘7월의 계림’ 등 16점을 처음 공개한다. ‘통영항’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전혁림 개인전을 관람한 뒤 주문해 1억5000만 원에 구입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본관에서 철거했다가 현 정부 들어 다시 걸어 놓았다. 반면 문 대통령 취임 초기까지 집무실 등에 걸려 있던 장우성의 그림들은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우성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풍자화 ‘아슬아슬’을 발표했었다.

▷청와대는 606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1966년부터 2006년까지 수집한 것들이다. 청와대의 미술품 관리는 체계적이지 못했다. 소장품 목록도 김영삼 대통령 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아직도 190여 점만 정부 공식 관리 미술품으로 분류돼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체계적으로 등록하고 전시회도 자주 열어야 한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
#청와대#청와대 1주년 기념품#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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