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빠를 보자 동민이(만 4세)가 달려들어 말을 태워 달라고 한다. 아빠는 몇 번 “피곤해. 내일 놀자” “매달리지 마. 힘들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아이가 계속 매달리자 자기도 모르게 “아우 진짜! 힘들다고 했잖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버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얼른 달려와 아이를 안으며 말한다. “아빠가 오늘 정말 피곤하신가 보다. 힘들어서 그러신 거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그러게,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지 그랬어.”
배우자가 욱할 때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대처한다. 욱한 배우자의 사정을 아이에게 설명하며 이해하라고 하고, 사실은 아빠가 욱한 원인 중 네 탓도 있으니 반성하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아이에게, 30∼40년을 산 사람이 감정 조절을 못 한 것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피곤하니까, 피곤한데 놀아 달라고 했으니까 내가 욱한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는 굉장히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다.
물론 동민이 엄마가 이렇게 대처한 이유는 너무나 잘 안다. 아이가 상황을 이해하면 덜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를 미워하게 될까 봐 걱정이 돼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떻게 다 큰 어른의 감정을 미리 헤아려서 행동할 수 있을까. 아이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고 무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잦아지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매사 불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말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도 있을 수 있다. 아이가 화가 나서 장난감을 던졌다고 치자. 아빠가 이걸 보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그러게. 장난감 던지지 말랬지. 네가 장난감을 던져서 아빠가 화가 난 거잖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는 “장난감을 던지지 마”라는 가르침이 먹히지 않는다. 장난감을 던지기는 했지만 아이는 아빠의 화가 난 소리에 더 놀라 있는 상태다. 놀란 감정을 먼저 위로해줘야 한다.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는 가르침은 상황이 모두 마무리된 후에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만 받을 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우자가 아이 앞에서 욱했을 때는, 아이의 감정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이다. “많이 놀랐니? 놀아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무서웠겠네. 엄마가 왜 소리 질렀는지 물어볼게.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소리를 지르는 건 잘못된 거야.” 이렇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어떤 불편한 상황에서도 소리는 지르지 말아야 되겠네’라고 배운다.
만약 배우자가 너무 심하게 욱한다면,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 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장소를 전환해 주는 의미이다. 화나서 쌩 하고 나가 버리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잠깐 아이하고 나가 있을게. 한숨 좀 돌려”라고 배우자에게 말해 준다. 배우자의 화가 좀 누그러진 것 같으면,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아. 아이도 잘못했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해야 한다. 이때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탓하면 안 된다. 이렇게 상황을 풀어나가면 아이도 다른 사람의 불편한 감정을 안전하게 다뤄 주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상황의 마지막은 항상 안전하게 끝나야 한다. 부부가 대화를 나눈 후, 배우자에게 아이에게 직접 사과하도록 유도한다. “아까 나 좀 놀랐어. 아이도 놀랐을 거야. ○○야, 놀랐니?”라고 물어봐 준다. 아이가 여전히 울고 있으면, 욱한 배우자에게 “놀랐구나. 아빠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고 말하게 한다. 이것이 부모가 욱한 후, 아이에게 가는 나쁜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다. 부모가 서로 화가 나서 욕을 하거나 누군가 나가 버리거나 냉전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 과정이 어떠했든 마지막은 서로 감정적으로 상처 주지 않고 안전하게 끝나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이 지켜진다.
항상 한 사람이 흥분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 맞추느라 정신없다면, 부부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상담을 받으면 나의 심리적인 반응의 특징 등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면 상대방과의 소통이 훨씬 좋아진다. 아이 앞에서 욱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몇 년에 한 번이라면 괜찮지만 빈번하다면 반드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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