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참담한 기억이다. 많은 반성과 대책이 있었지만 지금도 각종 사고가 잇따른다. 하나같이 부실시공 등 인재(人災)로 지적된다. 우리는 원래 ‘자기 실속만 챙기는’ 무책임한 직업윤리가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과연 그럴까.
삼국시대 신라는 외적들의 침입을 막으려 경주 인근에 성을 쌓고 비석을 세웠다. 경주박물관에 있는 남산신성비(591년)와 명활산성작성비(551년)가 그것인데 비문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성을 쌓은 뒤 3년 내에 무너지면 관련자들을 엄벌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을 새겨 넣었다. 전형적인 공사실명제다. 게다가 공사 책임자의 담당 구간이 ‘11보 3척 8촌’식으로 1∼2촌(3∼6cm) 단위까지 세밀하게 적혀 있다. 책임의 정도가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과학적이고 철저했다는 얘기다.
고구려도 그랬다. 589년 세워진 평양 장안성에는 성벽에 글자를 새긴 돌인 ‘각자성석(刻字城石)’이 지금까지 5개 발견됐다. 여기에도 공사 책임자의 이름, 관직, 책임구간 등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 이 중 하나가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더 많은 사례들이 확인된다. 태조 때 축성한 이후 지속적인 보수가 이뤄졌던 한양도성에서는 각자성석이 현재까지 288개 발견됐다. 세종 등 조선 왕들의 실록에는 “도성이 5년 내 무너지면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하고, 잘했으면 상을 주라”고 성석에 이름을 새긴 이유가 분명히 적혀 있다. 책임기간이 삼국시대 3년에서 5년으로 늘었을 뿐 실명제의 정신은 똑같다.
성곽만이 아니다. 저수지를 수리하고 세웠던 신라의 영천 청제비, 조선 숙종 때 강화도 바다를 메워 육지로 바꾼 간척사업을 하고 남겼던 선두포축언시말비 등에서도 실명제를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성덕대왕신종, 백제 칠지도와 무령왕비 은팔찌 등에도 장인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자기 이름이 긍정적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문화는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구치, 샤넬 등 서양의 명품 브랜드가 대부분 사람 이름인 것도 그래서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우리 조상들의 직업윤리가 게으르고 무책임했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광범위했던 실명제는 투철한 직업윤리를 상징한다. 조선 성곽의 꽃으로 불리는 수원화성을 비롯해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 충남 해미읍성, 문경새재 주흘관, 전북 고창읍성, 부산 동래읍성, 청주 상당산성, 창원 웅천읍성, 강화도 돈대 등 공사실명제의 흔적은 전국 각지에서 확인된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직업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해선 안 될 것은 직업윤리의 핵심인 투철한 책임감이다. 따사로운 봄날, 역사도 공부하고 조상들의 반듯했던 직업윤리도 새겨볼 겸 주변 성곽이나 박물관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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