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골프채를 팔려면?” “서해대교를 한강으로 옮기려면?” 2000년대 초반 은행 취업 면접에 뚱딴지같은 질문이 등장했다. 이제는 ‘고전’이 된 면접 문항들이지만 당시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업종 특성상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은행권의 면접으로는 튀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1990년대 중반부터 채용 과정에서 모범생보다는 이자수익 이상을 창출할 ‘영업맨’을 골라내려고 씨름했다. ‘은행 고시’로 불린 필기시험도 이때 잇달아 폐지됐다. 영업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열린 공채’도 화두였다. 정권마다 이름은 달리 했지만 스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한 데다 은행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학력 전공 영어점수 같은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금융환경의 변화에 부응할 인재를 뽑기 어려웠다. 자연히 은행 공채에서 법대, 상경대 출신의 공고한 벽도 무너졌다. 지난해 공채에서 신한은행은 200명 중 30%, 우리은행은 150명 중 20%를 이공계 출신으로 채웠다.
▷우리은행이 올 상반기 공채부터 필기시험을 부활시켰다. 실무·임원면접만으로 행원을 뽑겠다고 선언한 지 11년 만이다. 지난달 28일 5시간 동안 치러진 필기시험에서는 ‘경제 트릴레마(3중 딜레마)’ ‘외환보유 종류’ 등 전문지식을 묻는 문제들이 다수 출제됐다. 앞으로 은행 공채에서 이처럼 경제, 금융지식과 상식을 묻는 객관식 위주의 필기시험이 부활한다. 채용 비리로 몸살을 앓은 은행권의 고육책이다. 기존에는 KB국민, KEB하나, NH농협은행 등 일부만 필기시험을 치렀다.
▷공정사회의 표상처럼 여겨졌던 ‘블라인드 채용’이 되레 채용 비리의 핵으로 지목된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은행권은 일단 청탁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점수대로 줄 세우는 방안을 택했다. 달라진 채용 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가뜩이나 ‘취직 바늘구멍’ 뚫기로 힘겨워하는 취준생들이 채용 비리 후폭풍까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듯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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