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팀추월의 교훈 벌써 잊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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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 선수 없는 팀플레이가 단체경기 팀추월의 승부 결정
文집권 1년, 지지율 높다지만… 생각 다르면 배제, 비난 일쑤
‘헛똑똑이 진보’의 덫 피하려면 팀 선두와 후미 간격 돌아보길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던 큰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여동생은 살갑게 맞이하나 남동생은 착잡하다. 5년 전 어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형에 반가움과 반감이 엇갈린다. 아버지를 보내고 이들은 유산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물려받는다. 엄청난 상속세를 감당하려면 대대로 애지중지 키운 포도밭까지 일부 처분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공동 소유’를 못 박은 유언에 따라 사면초가에 빠진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3남매의 합의가 전제조건이다.

‘버건디’로 불리는 적포도주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내용이다. 가족과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지혜가 빛을 발한다. 그가 남긴 것은 재산이 아니었다. 돈을 취할 것인가, 선대의 유산을 지킬 것인가. 각기 다른 생각 다른 목적을 가진 자식들에게 다시 한 가족이 되는 ‘통합’의 기회를 준 것이다. 선택의 고뇌 속에서. 소통과 합의의 난관을 통하여.

팀플레이가 어렵고 중요한 것은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공동 서명한 영국 프랑스 독일의 만류에도 일방적으로 공동전선에서 이탈해버렸다. 즉각 중동의 정세 불안이 가중되고 기름값은 급등했다. 초강대국의 역주행에 서방 동맹국들은 분을 참지 못하면서도 이런 불협화음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불안하게 지켜본다.

남북관계가 워낙 숨 가쁜 속도로 돌아가서인지 석 달 전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그렇긴 해도 청와대 국민청원 중 역대 최단기간 기록을 수립한 ‘팀추월’ 여자대표팀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팀원이 뒤처져 있는데 혼자만 달려가 봤자 말짱 도루묵. 마지막에 들어온 선수의 기록으로 승부를 정하는 평가방식과 더불어 또 다른 교훈도 얻었다. 내부공조를 저버리고 각자도생을 선택할 경우 앞서 도착한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과 귀책사유가 돌아간다는 것.

문재인 정부가 집권 1년을 맞았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1주년 지지율이 80%를 넘긴 유일한 대통령이란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관련 뉴스가 6·25전쟁 이후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수면 아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최저임금 파격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기업의 볼멘소리는 그렇다 쳐도 아파트 경비실의 노인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지각변동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환영하지만 그 지각변동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다져지는 과정은 충분했는지 짚어볼 만하다.

이 땅의 과거 현재 미래는 온 국민의 공동 소유이며,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유산임을 유념해야 할 이유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졌다 해도 모두가 ‘팀 대한민국’의 동반자란 사실은 불변이므로. 그러니 국정 운영도 남북관계도 그 궁극적 성공 여부는 ‘팀추월’ 평가방식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여전히 강고했다”고 문 대통령은 1주년의 소회를 표현했다. 뒤에서 붙잡는 존재에 섭섭한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 하지만 절벽에 추락하기 한발 전에 붙잡아주는 것도 그들이다. 모두를 아우른 팀워크로 다같이 결승점을 통과하도록 끌어가는 것이 지도자의 존재 이유다.

‘헛똑똑이 진보’를 향한 쓴소리가 최근 신문에 실렸다. ‘진보주의자여,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제목으로. 문화계와 대학가는 물론 미디어를 쥐락펴락하는 ‘힘센’ 진보의 오만과 편견을 꼬집은 뉴욕타임스의 칼럼이다. 견해가 조금만 달라도 중도건 보수건 싸잡아 울타리 밖으로 밀쳐내고 구제불능으로 낙인찍는 태도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트럼프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란 전망이 뒤따른다. 이런 자아도취 풍조가 과거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마저 진보진영에 등 돌리게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상당수 유권자는 어떤 이념과 후보자,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그에 대한 반감에서 결연히 투표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이삭줍기에 바쁠 한국의 진보 그룹 인사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지금의 꿈처럼 달콤한 시간을 백일몽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팀원 간 불화로 무너진 팀추월 경기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내 편 아닌 사람들 평가에도 겸허히 귀 기울이고, ‘팀’의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얼마만큼 벌어졌는지도 한번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남북관계#문재인 정부 집권 1년#진보주의자#팀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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