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국토 면적(60만3600km²)이 한반도의 3배가량인 데다 60%가 경작지여서 유럽 국가 중 가장 넓은 농경지를 가진 곡창지대다. 하지만 산과 강 같은 자연방어선이 없어 어느 한 민족이 터전을 잡고 방어하기가 쉽지 않아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허승철 ‘우크라이나 현대사’). 몽골도 이곳을 점령해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웠다 물러갔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 전쟁(1853∼1856년)도 러시아와 오스만튀르크, 영국, 프랑스 등이 중간에 낀 크림반도를 무대로 싸운 것이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미국과 서유럽이 제재를 가한 이후 우크라이나는 서유럽 신냉전의 진원지가 됐다. 강대국 세력이 ‘전략적 단층선(strategic fault line)’에서 맞부딪치는 ‘섀터 벨트(shatter belt·분쟁 지대라는 뜻의 지리학 용어)’의 한 곳이 됐다. 미중 기 싸움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진통을 겪는 한반도와 종종 비견되는 이유다. 최근 한-러대화(조정위원장 이규형 전 주러시아 대사) 등 주최로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단층선상에서 중견국 외교를 펼쳐야 하는 ‘동류 국가(like-mined country)’”라며 “우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림반도 흑해 연안 휴양지 얄타의 리바디아 궁전에서는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 3국 정상이 한반도 분할을 결정하는 얄타 회담을 가져 한반도와는 가슴 아픈 인연도 있다. 일제강점기 극동에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 후손도 2만∼3만 명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5일 크림반도 케르치와 러시아의 타만을 잇는 ‘크림대교’ 개통식에 참석해 크림반도 영유권을 강조하는 ‘트럭 퍼포먼스’를 벌였다. 오렌지색 러시아제 트럭 ‘카마스’를 모는 장면을 트럭 안에 설치된 카메라로 러시아 전역에 생중계했다. 크림대교(길이 19km)는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대교’(17.3km)를 제치고 유럽 최장 다리가 됐다.
러시아는 크림반도가 오랜 역사 동안 자국 영토였고 스탈린이 1954년 양도한 것을 되찾아 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이고 서유럽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크림반도 병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약속했던 안전보장 약속을 묵살한 것이다. 소련 해체 후 물려받은 핵무기로 세계 3위 핵 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핵과 핵물질을 러시아로 보내고 연구소 해체, 과학자 해산 등 영구적인 핵 폐기 조치를 취했다. 20세기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를 경험한 ‘핵 트라우마’도 있었다.
핵 폐기 조치 전 우크라이나 의회와 군부 등이 “핵을 포기하면 소련으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반발하자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안전보장 협약을 맺었다. 뒤에는 중국도 보증국으로 참가했다. 조약에는 ‘국경 변경은 평화적인 방법과 합의된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역 의회 결의와 주민 투표 등을 명분으로 자국 영토에 병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뒤 미국과 기 싸움을 벌이는 핵심도 체제 안전 보장일 것이다. ‘강대국이 약속을 안 지키면 방법이 없다’는 우려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푸틴이 트럭을 몰고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북한 급변사태가 났을 때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대교를 건너오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되거나 최고지도자 신변에 급한 일이 생기는 등 혼란이 발생하면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핵무기 안전을 지키는 등의 명분으로 군을 투입하고 심지어 북한 일부를 분할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사태처럼 한국과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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