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인물탐구/최영훈]‘경쟁력 강화’ 얘기 아예 없고 노동개혁 말도 못 꺼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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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중국의 ‘제조 2025’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대비가 안 보이는 것은 나의 무지 때문인가”라고 개탄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중국의 ‘제조 2025’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대비가 안 보이는 것은 나의 무지 때문인가”라고 개탄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자문회의) 부의장이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경기 진단을 놓고 설전(舌戰)을 벌였다. 대통령직속기구의 책임자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의 충돌은 화제를 모았다. 먼저 김 부의장이 페이스북에서 ‘경기 침체의 초입’이라고 우려하자 김 부총리가 ‘어떤 분 얘기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 부의장이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쓴소리를 이어갔다. ‘내각과 청와대 경제팀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 된다’는 충고였다. 17일 김 부의장을 광화문 KT 사옥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
 
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서강대 교수 출신인 김 부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통했다. 그런 그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부의장을 만나자마자 “정체성이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믿는 경제학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경제의 효율성이나 공정성을 훼손할 때 공동체를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선 “개혁적 보수”라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취임 후 아무런 자리도 맡지 않았다. 국가미래연구원에서 경제공부를 하며 함께 박 전 대통령을 도왔던 10여 명이 장차관, 대통령수석비서관이 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부의장은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시장경제를 존중했고 내가 ‘알던 시간’까진 공익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도왔다. 그러나 캠프가 발족하고 난 뒤 (박 전 대통령에게) 트라우마가 있고 소통이 안 되는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 멀어졌다. 그런데도 정부 출범 후에도 계속 내가 뭔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됐다. 그래서 2014년엔가 ‘가정교사’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졌나.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주도한 경제개혁연대와 ‘보수와 진보의 대화’를 여러 차례 했다. 노동개혁을 주제로 한 행사에 당시 대선 주자였던 문 후보를 비롯한 인사들을 초청했다. 그때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문 후보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6년 가을 캠프로 와 달라는 요청이 왔다. 미래연구원을 키우는 데 몰입할 때라 고사했다. 몇 차례 요청이 계속 오다 ‘경제 강의를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연구원으로 오시면…’ 하겠다고 했다. 바쁠 때라 안 올 것으로 생각하고 부드럽게 거절한 셈이다. 그런데 왔다. 연구원에서 장시간 경제 얘기를 나누고 막걸리도 마셨다. 그후에도 요청이 왔으나 박 전 대통령의 법적인 상태(탄핵 여부)가 결정이 안 된 상태에선 곤란하다며 거절했다. 결국 대선 직전 문 후보 캠프에 참여해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대통령이 자문회의에 힘을 실어주나.

“헌법기구지만 자문기구이다 보니 위상은 애매하다. 의장인 대통령이 정책조언을 얼마나 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자문회의 의견에 대통령이 수긍을 하고 존중해준다.”

그는 남북 문제가 블랙홀처럼 경제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미 회담과 지방선거가 끝난 뒤 자문회의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최대한 목소리도 내겠다.”

―최악의 일자리 절벽이 걱정이다.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중심경제의 핵심이다. 대통령의 1호 업무 아닌가.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성적표가 나쁜 것이다. 입이 열 개라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 앞에 할 말이 없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나.

“사회정의를 세우고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년 사회적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경제적 효율성은 후순위로 밀렸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제의 효율성, 즉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집권 2년 차에는 이런 방향으로 정책 우선순위가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발 고용감소를 인정했다.

“속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환자를 다룰 때도 몸 상태를 보고 처방해야 한다. 젊은 사람에게 하듯 노인에게 센 약을 처방하면 문제가 생긴다. 임금을 지불하는 측도 고려했어야 한다. 많은 중소기업 자영업자가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 집안에 두 명이 일하다 한 명이 실직하면 최저임금이 올라봐야 가족 전체 수입은 줄어드는 것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하성 정책실장은 “최저임금과 고용 감소는 관계가 없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같은 정부 내의 딴 목소리에 대해 지적하자 “(장 실장은)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를 보고 그렇게 말한 걸로 안다”고 했다.

―경기 진단에 김 부의장과 경제팀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경제를 책임진 공직자로선 국민에게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기지표 중 어두운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도 심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민간의 창의력이 중요한데 규제는 그대로고 교육도 평준화로 달린다. 구조가 이런 식이면 통계적으로 좋아질 전망이 없다. 이런 현실을 가장 많이 피부로 느끼는 게 기업이다.”

―그렇다면 시급히 재조정해야 할 정책은 뭔가.

“경쟁력 강화 얘기가 아예 없다. 기업은 기가 죽어 열심히 사업할 의지가 없고, 경제공무원도 열정적으로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해소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중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조 2025’ 계획을 세웠다. 사회주의 국가는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움직인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산업이 중국에 다 먹히는 때가 올 수 있다.”

―세계 경제도 ‘10년 호황 끝, 경기 침체 시작’ 얘기가 들린다.

“독일은 ‘슈뢰더 노동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했다. 실리콘밸리의 공식이 아니라 기존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혁신도 배워야 할 점이다. 우리는 노동개혁은 말도 못 꺼낸다. 연간 파업 일수가 독일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위기가 닥치기 전 노사정이 합심해 교육훈련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직무능력을 높이면 생산성이 상승하고 임금도 오른다. 결국 노사가 윈윈하는 것이다. 정부는 인센티브를 조성해야 한다.”

김 부의장은 노동개혁과 함께 ‘규제 망국론’을 화두로 꺼냈다. 말로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면서도 이익집단의 반발에 무산되곤 한다며 “특히 국회가 약하다”고 꼬집었다. “법을 고치지 않아도 현행 규제의 30%는 공무원이 긍정적 사고로 업무를 처리하면 풀린다. 사후 문책 당할까 봐 소극적인데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없애면 나아진다.”

―경제도 문제지만 정치가 더 문제다.

“보수 궤멸 얘기가 나온다. 여당 지지가 55% 내외로 다른 야당을 다 합친 것보다 두 배를 넘는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는 목소리가 크다. 진보가 국민통합을 위해 보수를 배려해야 한다. 보수 역시 집권세력이 경제는 잘 못 하니 실수하길 기다리는 식으론 곤란하다. 여야 모두 나라를 위해 한 방향으로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김 부의장은 대통령과 정부에 ‘쓴소리’ 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자임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봤는지 물어봤다. “대통령도 저에 대해 ‘그분과 내가 생각이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는 자세는 돼 있다.” 그러나 그는 “듣기는 잘 듣는데 행정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재차 묻자 “확인해 보지 않아서…”라며 말을 흐렸다.

김 부의장은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추구한다며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존재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말끝에 “세계의 변화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폐쇄적이고 경직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쓴소리를 계속 하겠다”고 다짐한 김 부의장. 어쩌면 문재인 정부 내에서 ‘언론자유’를 누리며 보수를 대변할 유일한 사람일지 모른다. 끝으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을지’ 물어보자 “기업도 국민도 전문가도 경기가 심각하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경제가 정말 어려워진다. 정책 우선순위에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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