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일본 바로 곁에 인구 1억 명에 육박하는 대국이 생기는 게 된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 출연자는 말을 이어갔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된 지 70년이 넘어 체제와 문화, 사상이 이질적인 나라가 됐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른 상처는 더욱 뿌리 깊다.” 요즘 이런 일본 방송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일본은 완벽하게 외부자 포지션이 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때면 “한반도가 이렇게 (분단)된 데는 일제 식민지배의 영향도 있다”는 한마디가 따라붙었지만 지금은 일언반구도 없다.
일본이 의도한 바는 아니라지만, 2차대전 패전국 중 독일은 동서로 분단됐다. 동북아에선 일본 대신 한반도가 분단됐다. ‘분단의 비극’이 낳은 비극인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은 전후(戰後) 복구에 성공했고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얻어냈다. 사실 38도선, 혹은 39도선 분단이란 개념도 일본에서 처음 나왔다. 19세기 말 열강의 각축 속에서 일본은 러시아에 39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나눠 갖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앞서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명나라 장군에게 한반도를 나눠 갖자는 제안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기면서 한반도를 통째로 얻었다.
평소 통일이란 개념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지만 인구 1억 명이 넘는 일본 사회를 지켜보면서 ‘만약에’를 떠올리곤 했다. 인구 1억 명이면 자체 완결적인 시장이 형성된다. 같은 언어를 쓰는 1억 인구가 지식 시장을 형성하면 문화의 자양분도 달라진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는 이유도 국내에서 충분히 편하게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반도에 평화와 공존이 찾아온다면 인구 1억 국가가 누릴 수 있는 안정과 번영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른다.
이웃 나라의 고착화된 분단 현실에 안주한 탓일까.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전개되는 한반도 환경의 격변에 대응하는 일본의 움직임은 둔하기만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표변이 당혹스럽고 그 변화의 속도가 어지러운 눈치다. 나아가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색도 역력하다.
일본 내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교가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 슬슬 터져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감에만 의존한 판단 착오, 한국 중국과의 연대 부족, 대북 강경 자세만을 어필해온 부작용이란 지적들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 “이제 일본은 최후까지 ‘악역’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자탄도 들린다. 18일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심포지엄에서도 한국과 미국 참가자들은 일본에 대해 ‘북한으로 하여금 철저한 핵 포기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일본이 한반도에 대해 늘 이런 분위기였던 건 아니다. 개헌과 대북 강경책을 정권 부양의 양대 엔진으로 삼아온 아베 정권이 출범한 지 5년 반이 흘렀다. 그간 아베 장기 집권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와 장기 집권하는 아베 정권이 이끄는 여론이 ‘닭과 달걀’처럼 상호작용을 해왔다. 혹여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돌아온다면, 아베 정권은 가장 큰 정치적 동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반도 상황이 일본 정치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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