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고용과 경기 악화 무엇이 문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2일 03시 00분


취업률 낮은 고령인구 늘면서 취업자수 증가 급락 ‘고용쇼크’
좋은 일자리, 새기업이 만들어내 산업계 역동성을 회복시켜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4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2만 명 느는 데 그치면서 고용 쇼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20만∼30만 명을 넘나들던 수치가 올해 2월부터 갑자기, 그것도 3개월 연속 10만 명대로 떨어지니 충격으로 다가올 만하다. 특히 제조업의 생산과 일자리가 부진해지면서 경기가 침체 국면 초입에 들어섰다는 진단도 나온다. 반면 올해 2, 3월 소매 판매액은 지난해에 비해 각각 6.6%, 7% 늘어 소비 회복의 신호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경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고용부터 살펴보자. 사태를 객관적으로 논하려면 연령대별 상황을 봐야 한다. 15∼64세, 즉 생산연령인구의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수)은 지난해 4월과 올해 4월 모두 66.6%로 같았고, 65세 이상 노년층의 고용률은 31.2%에서 32.0%로 오히려 높아졌다. 두 그룹의 고용률 모두 지난해보다 나쁘지 않고, 과거 흐름에 비해서도 괜찮은 편이다. 핵심 연령층인 25∼59세 고용률도 75.7%에서 76.0%로 높아졌다. 그런데도 고용 쇼크가 발생한 건 고령화 때문에 인구의 무게중심이 고용률이 낮은 노년층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연령인구는 1년 사이에 6만5000명 줄었고 노인인구는 31만7000명 늘었다. 취업자가 12만 명 는 것도 노인 취업자 수 증가(15만8000명)가 아래 세대 취업자 수 감소(3만4000명)를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고용의 고령화는 취업의 질을 낮추고 재정 의존도를 높이지만 불황에 기인한 건 아니다.

과거 수십 년간 늘어오던 생산연령인구는 지난해 5월에 정점을 찍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줄고 있다.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된다. 취업자가 20만∼30만 명 느는 게 당연한 시대는 끝났고, 경기가 좋든 나쁘든 취업자 수는 부진할 수밖에 없는 고용 역풍의 시대가 시작됐다. 고용을 보는 시각도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가 괜찮은 건 아니다. 소비가 늘고 세계 경기가 양호한데도 ‘괜찮은 일자리’인 제조업 고용이 부진한 것은 자동차·조선 산업의 구조조정과 산업 생태계의 경직성이 맞물린 결과다. 한국 제조업의 5대 주력 품목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휴대전화 석유제품인데 10년 전과 똑같고 20년 전과도 거의 같다. 상위 기업들도 거의 그대로다. 집중도도 높다. 선진국보다 역동성이 떨어진다. 주력 산업 두 개가 고용을 줄이는 와중에 산업 생태계가 이에 상응하는 새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직된 모습이다.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경쟁력과 무관하게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기업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좋은 일자리는 주로 새로운 기업과 산업이 커갈 때 만들어짐을 감안하면 경직적 생태계는 고용 창출과 경제 성장에 치명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2011년 이후 하락한 주된 이유는 기업들 사이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특히 대기업집단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소속 기업들에 자원이 과도하게 배분된 것이 문제라고 한다. 효율이 낮고 경영을 잘못해도 대기업집단 소속이면 살아남고, 효율이 높아도 집단에 끼지 못하면 크지 못하는 퇴행적 상황이다. 기득권자들이 시장지배력을 활용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쉽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경유착으로 진입장벽 쌓기, 가족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기술 탈취,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효율과 형평을 모두 해치는 반시장적 행태들이 광범위하게 이뤄져도 제도적으로 이를 충분히 규율하지 못한다. 혁신보다 반칙이 더 큰 수익과 지배력을 가져다주는 기업 환경에서 경쟁력과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겠나.

최근 고용 논쟁과 경기 논쟁을 불러온 고용 부진과 제조업 부진은 인구구조 고령화와 산업 생태계의 경직성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제도적 문제에 주로 기인한다. 단순히 경기 문제로 보고 경기 부양을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다가는 생산성 저하의 원인 중 하나인 부채 주도 투입 성장으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및 제도 개혁을 가속화하고, 청년·여성인구의 고용률을 더 높이면서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할 과감한 대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고용 쇼크#제조업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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