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못 가는 것이 문제인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가고 싶은 데 가려고만 하면 죽을 것같이 두렵다고 했다. 학교에는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도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내일도 꼭 와야 해” 하면서 잘해줬다. 부모는 이사도 해보고 전학도 시켜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의 부모는 직장도 안정적이고 점잖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치료에도 적극적이었다.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사이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집안 분위기나 양육 태도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아이의 상태는 불안감이 높아지다 공포 수준이 된 정도였다.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진료를 거듭하며 아이의 문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밤 기억이 있었다. 그날 아이는 어쩌다 세수를 안 하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엄마가 “○○야 세수해라. 세수하고 자야지”라면서 깨웠단다. 아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졸려서 잠을 깨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세수를 하라고 하면, 하고 자면 되잖아” 하면서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욕실까지 끌고 갔다고 한다. 욕실 앞에서 아이는 너무 두려워서 안 들어가겠다고 버텼단다. 그랬더니 아이 표현이 아버지가 자기를 번쩍 들어서 욕실 안에 내동댕이쳤다고 했다. 아이는 그때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참 사소한 일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사소한 일인데…”라고 했더니, 아이는 “맞아요. 원장님 되게 사소한 일이잖아요”라고 했다. “그래. 사소한 일이었네. 어리니까 ‘그냥 오늘은 자고 내일 닦아라’ 하면 될 일을…” 했더니, 아이는 “그러면 됐을걸. 그러면 됐을걸. 내가 매일 세수를 안 하는 아이도 아니고 어쩌다가 그런 건데” 하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물론 이 아이의 모든 불안의 원인이 이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일을 사소하게 다루지 못하는 부모를 많이 본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너무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낸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 바로 손을 안 닦는다고 소리를 지르고 타임아웃까지 하면서 아이와 밀고 당기기를 한다. ‘손 닦는 것’도 사소한 일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너무 비장해진다. 결국 아이와 부모는 서로 싸울 상대가 되어 있다. 싸움이 시작되면 이겨야 한다. 나중에 보면 부모고 자식이고 하는 역할은 없고, 서로 이기려고만 하는 모습이 된다. 그리고 결국에 이기는 것은 나이도 많고 힘도 세고 몸집도 크고 말도 잘하고 생존권까지 잡고 있는 ‘부모’이다.
문제의 중차대함을 따져보면 사소한 것인데, 왜 우리 부모들은 그것을 그 무게에 맞게 가르쳐주지 않고 언제나 감정싸움을 하게 될까? 부모가 손을 닦으라고 하는 것은 아이에게 위생관념을 가르쳐주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손은 꼭 닦아야 하는 거야.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 건강을 위해서야. 생각보다 손이 더러워” 하면 된다. 이렇게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다. 바로 닦지 않으면, 좀 기다려주면 된다.
한 엄마가 그랬다. 아이가 그 사소한 것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순간에는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되는 애가 이렇게 내 말을 안 듣네. 저 메롱 하는 것 좀 봐. 벌써 나를 무시하네. 앞으로 어떻게 가르쳐?’라는 생각이 든단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몇 살이세요?” 그 엄마가 대답했다. “서른여덟이요.” 내가 말했다. “아이보다 삼십사 년을 더 살았구먼.” 그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들이 자꾸 비장해지는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의 부모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러 가지 불편함으로 존재한다. 고통의 모습이기도, 한의 모습이기도, 후회의 모습이기도, 원망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불편한 마음들은 부모가 되었을 때, 비현실적이고 절대로 불가능한 ‘이상적인 부모, 완벽한 육아’에 매달리게 한다. 무엇보다 그 부모와 그 육아의 모습은 자기 스스로도 아직 개념이 잡혀 있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도 모른다. 그래서 더 쫓기듯이 너무 비장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비장함이 아이를 숨 막히게 한다. 부모와 아이 관계를 망가뜨리고, 아이의 정서를 불안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육아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편안한 육아다. 육아 앞에서 너무 비장해지지 말자. 괜찮다. 그 정도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제발 사소한 것은 그 무게에 맞게 그저 사소하게만 다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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