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투쟁을 살아나게 해준 당신과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당신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국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최근 트위터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중년 남성의 진심 어린 응원을 받은 상대는 아직 10대인 에마 곤살레스 양. 1999년생인 그는 2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 참사의 생존자다. 그는 3월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워싱턴 집회에서 삭발한 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연단에 올라 주목받았다. 그는 총기 사고로 희생된 친구 이름을 하나씩 부른 뒤 잠시 침묵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는 “내가 이곳에 올라온 지 6분 20초가 지났다. (총기 참사 당시) 이 정도의 시간에 17명의 친구가 사라졌고 15명은 다쳤다”고 말해 어른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온라인에서 총기규제 운동을 이끌고 있다. 곤살레스의 트위터 팔로어는 162만 명.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전미총기협회(NRA) 트위터 회원 수(67만5000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같은 ‘앵그리 10대’의 부상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10대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어른들이 뭉그적거리는 바람에 사회 문제가 끊이지 않자 아이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해 나선다. 영국 ‘옵서버’가 최근 소개한 런던의 18세 고교생 아미카 조지 양도 마찬가지다. ‘여성평등 운동가’인 조지 양의 고교 앞에서는 방송국 차량 기사가 종종 대기한다. 학교 수업을 듣던 그를 빨리 태워 출연 시간에 늦지 않게 방송사로 모시기 위해서다. 조지 양은 지난해 자기 또래 소녀들이 가난 탓에 생리대조차 사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를 더욱 분노하게 한 건 문제를 알고도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였다. 그는 ‘어른들이 해결 못하니 내가 하겠다’며 온라인에서 이들을 돕는 국민청원을 시작해 한순간에 여성운동가가 됐다.
10대들에겐 소셜미디어가 캠페인의 동반자다. 인도 동부 비하르주에서는 1월 여학생들이 조혼에 항의하는 뜻으로, 어른들과 함께 인간 띠를 만들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해 화제가 됐다. 방글라데시에서도 10대 소녀 수천 명이 최근 아동 결혼을 막자는 ‘결혼을 막는 사람들’ 운동을 이끌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접한 ‘소녀는 신부가 아니다’ 캠페인을 벤치마킹했다.
‘앵그리 10대’는 벌써 정치 지형을 바꿀 조짐을 보인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0대들이 수도 워싱턴에서 18세부터 보장되는 선거권을 16세로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고 시의회 의원 절반 이상이 이미 16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는 개정안에 찬성했다”고 2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날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신규 유권자 등록이 급증하고 있다. 10대와 20대 등록이 예년보다 늘면 이번 11월 중간선거에서 애리조나주, 플로리다주 등 경합 지역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선거권 연령 낮추기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찬성하는 이들은 많은 10대가 민주주의를 일찍 배우고 자신이 누구인지, 사회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 어떤 직업을 택할지를 고민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반면 10대의 정치 활동을 여전히 회의적으로 보는 어른도 많다. 곤살레스 양을 비롯한 10대 활동가들의 트위터에는 ‘네가 뭘 알기는 하냐’는 뉘앙스의 댓글이 붙는다. 워싱턴 지역 라디오 방송 ‘WMAL’의 프로그램 진행자 크리스 코어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16세는 신용카드를 소유할 수 없는 나이인데, 이 나이 아이들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다. 18세가 돼야만 사고가 잘 형성돼 투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명한 점은 요즘 10대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소셜미디어로 더 많이 경험하고 사고한다. 최근 유럽에서 부쩍 늘어난 30대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인보다 생활 밀착형 정책을 더 잘 내놓고 혁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앵그리 10대’들도 이들처럼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일찍이 터득한 민주주의를 숙성시켜 우리 사회의 정치인, 또는 자기 일상의 정치인으로 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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