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여론조사 불신론이 극에 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론조사가 늘어날수록 여론 파악이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얼마 전 지도 학생이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4월 8, 9일 서울 시민 812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투표 후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9%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서울지역 득표율은 42.3%였다. 실제보다 문 대통령 투표자가 약 1.5배 과대 표집된 것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 유권자의 조사 참여율에 심각한 비대칭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조사업계는 유일하게 참값과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이 설문에 ‘거짓 응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개를 꺼려 왔다. 그럼 같은 응답자가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은 믿을 수 있을까? 설문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다.
일각에서는 자동응답설문조사(ARS)를 문제로 지목한다. 싸구려 조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작년 5월부터 지난주까지 발표된 213개 지지율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면접조사는 ARS보다 지지율을 평균 약 5.71%포인트 더 높게 추정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 시민 대상 조사는 ARS로 진행됐다. 그렇다면 면접조사는 문 대통령 투표자를 더 많이 포함할 것이다. 면접조사가 상대적으로 저가인 ARS보다 항상 더 정확한가도 기준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면접조사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 하는 까닭에 ‘표본 참여 편파성’이 클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실시된 276개 조사 결과를 ‘태블릿PC’ 논란이 시작된 2016년 10월 24일 전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기준 시점 이전에는 면접조사가 ARS보다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을 약 0.24%포인트 높게 추정한 반면에 그 이후에는 4.48%포인트 낮게 추정했다. ‘보수’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시각이 부담스러워 조사 참여를 꺼리는 유권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응답률 10% 이하의 조사는 발표를 금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응답률이 10% 이상인 조사는 오히려 문 대통령 지지율을 약 5.49%포인트 높게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응답률이 어정쩡하게 높은 조사는 오히려 왜곡이 심했다. 현재 실시 중인 면접조사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2017년 8월 28일∼9월 9일 실시된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응답률이 50%를 넘었다. 총 24억 원이 투입된 이 조사에서는 모든 참여자에게 참여료로 5000원씩을 지급했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응답을 거부한 응답자에게 최대 14번까지 재접촉을 시도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 2만여 명 중 39.6%가 여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시기에 발표된 갤럽 조사(9월 1주 차·50.0%)보다 10%포인트(또는 5분의 1) 이상 낮은 수치다. 응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표본 참여 편파성’이 일정 부분 해소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갤럽 조사의 응답률은 18.3%였다.
뭘 바꿔야 할까? 보도 가능한 응답률 기준을 50%로 정한다면 ‘표본 참여 편파성’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용이 문제지만 여론조사 신뢰도가 바닥인 현 상황에서 지금처럼 여론조사를 쏟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도 분기별로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대통령에게 정책 추진의 기회를 주고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또는 모든 정치 조사에 참값 대비 검증이 가능한 설문인 ‘지난 대선 투표’를 묻고 결과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후 해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조사업계 주장처럼 ‘거짓 응답’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실제 선거 결과와 차이가 크다면 유권자가 이를 고려하여 해당 조사의 결과를 해석하면 된다. 더 이상 여론조사가 여론 파악을 방해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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