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응답률 50% 이하’ 여론조사는 문제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9일 03시 00분


현실 반영 못하는 조사 불신 높아… 응답률 높이고 조사 횟수 줄여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 불신론이 극에 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론조사가 늘어날수록 여론 파악이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얼마 전 지도 학생이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4월 8, 9일 서울 시민 812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투표 후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9%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서울지역 득표율은 42.3%였다. 실제보다 문 대통령 투표자가 약 1.5배 과대 표집된 것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 유권자의 조사 참여율에 심각한 비대칭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조사업계는 유일하게 참값과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이 설문에 ‘거짓 응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개를 꺼려 왔다. 그럼 같은 응답자가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은 믿을 수 있을까? 설문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다.

일각에서는 자동응답설문조사(ARS)를 문제로 지목한다. 싸구려 조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작년 5월부터 지난주까지 발표된 213개 지지율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면접조사는 ARS보다 지지율을 평균 약 5.71%포인트 더 높게 추정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 시민 대상 조사는 ARS로 진행됐다. 그렇다면 면접조사는 문 대통령 투표자를 더 많이 포함할 것이다. 면접조사가 상대적으로 저가인 ARS보다 항상 더 정확한가도 기준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면접조사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 하는 까닭에 ‘표본 참여 편파성’이 클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실시된 276개 조사 결과를 ‘태블릿PC’ 논란이 시작된 2016년 10월 24일 전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기준 시점 이전에는 면접조사가 ARS보다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을 약 0.24%포인트 높게 추정한 반면에 그 이후에는 4.48%포인트 낮게 추정했다. ‘보수’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시각이 부담스러워 조사 참여를 꺼리는 유권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응답률 10% 이하의 조사는 발표를 금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응답률이 10% 이상인 조사는 오히려 문 대통령 지지율을 약 5.49%포인트 높게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응답률이 어정쩡하게 높은 조사는 오히려 왜곡이 심했다. 현재 실시 중인 면접조사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2017년 8월 28일∼9월 9일 실시된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응답률이 50%를 넘었다. 총 24억 원이 투입된 이 조사에서는 모든 참여자에게 참여료로 5000원씩을 지급했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응답을 거부한 응답자에게 최대 14번까지 재접촉을 시도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 2만여 명 중 39.6%가 여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시기에 발표된 갤럽 조사(9월 1주 차·50.0%)보다 10%포인트(또는 5분의 1) 이상 낮은 수치다. 응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표본 참여 편파성’이 일정 부분 해소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갤럽 조사의 응답률은 18.3%였다.

뭘 바꿔야 할까? 보도 가능한 응답률 기준을 50%로 정한다면 ‘표본 참여 편파성’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용이 문제지만 여론조사 신뢰도가 바닥인 현 상황에서 지금처럼 여론조사를 쏟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도 분기별로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대통령에게 정책 추진의 기회를 주고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또는 모든 정치 조사에 참값 대비 검증이 가능한 설문인 ‘지난 대선 투표’를 묻고 결과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후 해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조사업계 주장처럼 ‘거짓 응답’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실제 선거 결과와 차이가 크다면 유권자가 이를 고려하여 해당 조사의 결과를 해석하면 된다. 더 이상 여론조사가 여론 파악을 방해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자동응답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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