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안세영]北-美 회담 개최까지 유의해야 할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9일 03시 00분


안세영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 전공
안세영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 전공
협상 분야 석학인 미국 하버드대의 맥스 배이저먼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우(愚)는 ‘협상 탈출의 실패’다. 시작한 협상이 꼬이면 과감히 손 털고 나와야 하는데 체면, 명분 등에 얽매여 상대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이 같은 약점을 꿰뚫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조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가오는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상투적 수단이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은 전임 대통령들과 전혀 달랐다. 그의 저서 ‘협상의 기술’에서 밝혔듯이 상대가 나쁘게 나오면 아주 거칠게 응징한다는 트럼프 특유의 ‘파이트 백(fight back)’으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선제구를 날렸다. 이에 놀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급기야 지난 토요일에는 먼저 우리 측에 연락하고 황급히 판문점으로 내려와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하였다. 역시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이다. 허를 찌르는 초강수 폭탄선언 하나로 ‘중국의 함정’에 빠져 꼬이던 비핵화 협상판을 미국에 유리하게 뒤집어 버렸다.

그간 북-미 간 삐거덕거린 데는 중국이 작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서울-워싱턴을 연결하는 그랜드 디자인을 구상할 때 간과한 것이 중국의 역할이다. 혈맹 북조선이 미국과 직거래하는 ‘차이나 패싱’을 그냥 방관할 수 없는 노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다롄(大連)에서 “미국을 어찌 믿을 수 있냐”고 젊은 지도자의 혈기를 북돋웠다. 뭔가 북-미 사이에 간극을 만들기 위한 것인데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리가 없다. 김정은 방중 이후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유조차의 수가 부쩍 늘어나 경제 제재에 구멍이 뚫리고 숨통 트인 북한의 대미 비난이 거칠어졌다.

다음으로 북-미 간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충돌이다. 사실 평양의 30대 지도자는 유럽식 교육을 받은 신세대다. 하지만 리용호 외무상이나 김계관 등 구세대는 미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적 협상에는 익숙하지만 지금과 같은 서로 ‘윈윈’하는 호혜적 협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협상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막말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알리는 서한에서 ‘북한의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이란 표현을 썼는데, 평양 구세대들이 그간 습관적으로 해오던 그저 그런 막말이 국제외교의 경험이 전혀 없는 그에게 그대로 영어로 번역돼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평양 내부에서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에 뭔가 말 못할 엇박자가 있었던 것 같다. 한때 위기감이 감돌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일단 결렬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다행이다.

지난주 ABC방송은 문 대통령이 ‘너무 의욕적으로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하고 있다(overeager matchmaker)’고 꼬집었다. 이는 그간 우리 정부가 비핵화 협상의 성공을 과신해 너무 서두르고 방심했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이제부터라도 문 대통령이 지방선거나 지지율 같은 정치적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평화를 위해 백의종군한다는 각오로 좀 여유 있게 나갔으면 좋겠다.

평양도 평생 미제 타도만 외친 구세대 관료들에게 협상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말 독특한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는 전혀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시진핑도 앞으로 신중해야 한다. 다시 중국 배후설이 나오면 트럼프를 자극하여 엉뚱한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튀길 수 있다. 협상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진정성을 보인다면 우리도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고 내부 강경파를 설득할 수 있는 뭔가를 줘야 한다. 대북 협상에 유연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과 잘 협의해 좋은 협상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역사적인 쿠바 미사일 위기 협상이나 냉전을 종식시킨 미-소 핵무기 감축 협상도 몇 번의 결렬 위기를 겪고 극적으로 타결됐다. 따라서 비핵화 협상도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끈기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안세영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 전공
#북미 정상회담#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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