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40〉베토벤 곡을 자주 들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음악이 사람을 바꿔 놓을 때가 있다. “모든 예술은 끊임없이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는 말까지 있으니, 음악에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타인의 삶’은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통일되기 이전의 동독이 배경이다. 주인공 비슬러 대위는 슈타지, 즉 국가안보국 소속의 신문 및 도청 전문가다.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도청하고 필요하면 신문하고 고문도 서슴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기계’다.

그가 이번에 감시하는 인물은 드라이만이라는 유명 극작가이다. 그는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완벽하게, 작가의 집 곳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이만은 정권의 눈 밖에 나서 오랫동안 연출을 금지당했던 유명 연출가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고 비통해한다. 그리고 그 연출가를 생각하며 그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소나타 악보를 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재현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음악이 흐른다. 도청장치의 헤드폰을 통해 그 음악을 듣는 비슬러의 얼굴에 전에 볼 수 없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가 ‘인간 기계’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드라이만이 동독의 억압적인 현실에 관한 글을 서독 신문에 싣고도 무사한 것은 그 변화 덕이다. 비슬러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 보고서를 작성하고 범죄의 결정적 증거인 타자기까지 없앤다. “인간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 위에, 감정을 원칙 위에, 사랑을 엄격함 위에 놓는” 음악의 힘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질문 하나. 레닌이 그토록 좋아하던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더 자주 들었더라면, 비슬러 대위처럼 인간적으로 변했을까? 달리 말해, 레닌이 “혁명과업을 위해서 ‘열정’ 소나타를 들어야 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영화가 제기하는 다소 순진하면서도 고전적인 질문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음악#베토벤#드라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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