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9>인생을 건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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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95년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95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다보면 점심 메뉴를 정하는 사소한 선택부터 결혼이나 이주, 직업 등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 때로는 인생을 건 극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에게 예술인생 50년을 건 도박 같은 선택이자 도전이었다.

부유한 은행가였지만 고압적인 아버지의 반대로 좋아하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세잔은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조우하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다. 거듭된 낙선 끝에, 43세에 처음으로 살롱전에 당선됐지만 정작 본인은 실패한 화가라는 자괴감을 안고 살았다.

쉰을 넘기고도 인정받지 못했던 세잔은 1890년에서 1895년 사이 카드놀이라는 도박을 연상케 하는 주제로 다섯 점의 그림을 그렸다. 첫 두 점은 구경꾼을 포함한 등장인물 4, 5명이 배경과 함께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나머지 세 점은 오직 카드 플레이어 두 명만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두 사람만 남기고 주변 인물을 모두 생략해 주제와 구성을 단순화했다.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이 가장 마지막에 그려진 것으로,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면 속엔 모자에 정장을 갖춰 입은 두 남자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카드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마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과 실행의 순간에 처한 듯,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얼핏 보면 도박하는 사람들 같지만, 그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테이블 위엔 판돈도 없다.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존심이나 명예를 건 게임일지도 모른다.

이후 세잔은 대상을 재구성하고 더 단순화한 말년의 걸작들을 쏟아내며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었고, 카드놀이 그림 중 한 점은 2011년 3000억 원에 팔리면서 세잔의 명성과 이 그림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인생을 건 세잔의 선택이 옳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폴 세잔#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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