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처럼 곳곳에 휴일이 많은 오뉴월이지만, 모두가 그 휴일을 온전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일에 매몰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사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법정 근로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으며, 야근 및 휴일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85.7%가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들의 근무시간이 긴 편이라고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재직 중인 직장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잘 준수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38.7%)은 적은 수준이었다. 현재 ‘법정 근로시간’의 강도가 높은 수준인데,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최근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뜻하는 영어식 표현의 줄임말, ‘워라밸’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는 것은 이런 과도한 근무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현재 한국인의 삶이 워라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단 9.5%에 불과했으며, 본인의 삶이 워라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도 10명 중 3명(30.8%)에 그쳤다.
향후 워라밸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현저히 낮은 모습이었다. 전체의 76.3%가 한국은 ‘일과 삶의 균형’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젊은 세대일수록 부정적인 전망이 강했다. 심지어 워라밸은 결국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도 절반 이상(52.8%)에 달했다. 개인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는 사회 문화가 강하다 보니 노동시간의 단축이 쉽게 이뤄지기가 어렵고, 여가시간이 생겨도 그것을 즐길 만한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한숨 소리가 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록 임금 하락 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근로시간 단축이 전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의 시간보다는 조직 및 일의 성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한 완전한 의미의 ‘일과 삶의 균형’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진정한 ‘워라밸’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깊은 고민도 함께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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