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현수막 한 장이 여기저기서 놀림당하고 있다. ‘출근시간 30분 빠르게’라는 문구 때문이다. 우리 언어 관습에서 이는 ‘30분 일찍 출근’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프리랜서인 나조차 흠칫할 정도인데 직장인의 반응은 오죽하겠나. 단축, 짧게, 줄이자 등으로 표현했으면 아무 탈 없었을 테다. 비슷한 현상은 울산시장 선거 현수막에서도 관찰된다. ‘출산과 보육비를 확 줄여주겠습니다’라고 내걸며 가뜩이나 낮아서 문제인 출산율을 더욱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방선거에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여럿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첫째, 전문 에디터의 필요성을 모른다. 다들 자기가 한국어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과 글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다루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엄연히 전문가의 영역임에도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리어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흔하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둘째, 선거에서 인력이 필요한 부분을 자원봉사에 의존한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하면 해결되겠지만 현실에선 어렵다. 선거비용은 물론이고 유급 사무원 수까지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등록된 소수의 유급 사무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액수조차 최저임금 언저리여서 전문가 고용은 언감생심이다.
일전에 나도 대선을 준비하는 어느 정치인의 캠프로부터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싱크탱크 비슷한 형태로 참가해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한데 선거법 위반으로 차후 문제시될 수 있다며 원고료는 못 준다고 했다. 대신 선거에서 잘되면 다른 방식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글을 기고할 때마다 약정된 원고료를 수령하는 형태의 계약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게 가장 보편적이고 깨끗하고 공정함에도.
선거판 곳곳에 자원봉사 인력이 가득하다. 개중에는 꽤 많은 보수를 받아 마땅한 자기 분야의 전문가도 있다. 물론 순수하게 후보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돕는 사람도 있겠으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훗날 한자리 마련해주거나 특정 분야의 이권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하며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선거가 끝난 이후 갈등을 빚기도 한다. 계속 함께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에겐 보답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외면해서다. ‘너 자원봉사한 거잖아’라면서 입을 닦는단 소리.
공정한 풍토인지 의문이다. 정말 선거가 나라의 일꾼을 뽑는 장이라면 타인의 노동력 또한 존중하는 방향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금권선거를 방지한다는 취지 자체는 백번 옳다. 만약 그런 제약이 없다면 돈이 많은 후보와 정당이 훨씬 유리할 게 빤하니까. 하지만 그 규제가 역량 있는 인재의 영입과 정당한 보상을 방해할 뿐 아니라 보은인사 등의 역효과마저 야기한다면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빈틈을 메우고 교점을 찾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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