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세계일주를 하고 제주로 귀촌을 한 친구가 있다. 언젠가는 세계일주와 귀촌을 해야겠다고 꿈꾸고 있었는데 먼저 다녀온 친구가 부러웠다. 매일 통화하며 시골에 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계일주도 하고 귀촌도 하고 싶지만 일단 쉬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귀촌을 먼저 선택했다. 부부가 도시에서 영어선생을 했으니 돈이 떨어지면 영어 강의를 하면 된다는 배짱이었다.
서너 평 남짓의 귀촌인의 집에서 8개월을 백수처럼 온 동네를 어슬렁거렸던 것 같다. 귀촌인이 많은 마을이라 마을 소개 책자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가 인사도 나누며 다양한 사람과 친해졌다. 자원봉사도 하고 약간의 수고비를 받는 일도 해가며 시골에서 살 만한지 알아보았다. 하루는 남편과 함께 마을을 산책하던 중 목수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남편이 나무도 잡아주고 자재를 올려주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인연으로 남편은 집짓는 목수가 되었다.
이런저런 인연이 늘어갈 즈음 홍성군에서 운영하는 민관 협치 거버넌스 조직 ‘홍보통’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던 사람 대신 가게 되었다. 거버넌스 조직이 뭔지도 모른 채 참석한 자리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 공무원이 함께 홍성군을 홍보할 방법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토론이 재미있어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그때의 청년들이 모여서 지역 기반 미디어회사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도시에서 영어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인터넷 강의를 해본 경력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생각했다.
창업을 이끌었던 청년은 지역에서 10년 가까이 기자로 일했고 또 다른 청년은 영상감독을 할 수 있었다. 기자는 펜을 잡고 영상감독은 카메라를 잡고 나는 마이크를 잡기로 했다. 펜, 카메라, 마이크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마침 지역에서 작은 홍보영상을 만들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적은 비용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첫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소셜벤처 경연대회 예선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영이 쉽지는 않았다. 어느 달에는 20만 원을 가져가기도 하고 100만 원을 가져가기도 했다. 어차피 재미로라도 모여 일을 할 생각이었으니 돈이 없으면 가져가지 않았고 필요한 카메라와 편집 장비는 각자 가지고 있던 것을 활용했다. 워낙 소박하게 경영한 덕에 빚지지 않고 회사를 운영했다. 그렇게 햇수로 3년이 흘러 지금은 어엿한 미디어협동조합으로 크고 작은 영상 제작, 사례집 제작, 토크콘서트 기획 등의 일을 하는 ‘종합홍보기획사’가 되었다. 그리고 4월에는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작은 시골 회사가 살아남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1. 회사를 작게 유지한다. 과도한 투자를 받거나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 2. 창업자들 간에 신뢰를 깊이 쌓는다. 작은 불신은 위험하다. 3. 회사와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그래야 일이 끊이지 않는다. 4. 미디어 품질을 유지한다. 도시 회사들보다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더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청년이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로컬스토리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