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독일을 방문한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앞으로 상의를 벗은 여성 3명이 “독재자!”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반라의 여성들을 끌어내야 하는 경호원들은 당황했다. 정치적 구호가 적힌 가슴을 노출하는 기습시위로 유명한 활동가 ‘페멘(FEMEN)’이다. ‘성 극단주의(sextremist)’를 표방한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논쟁적인 활동으로 종종 물의를 빚는다. 하지만 이들이 가슴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세상이 유심히 봐줬을까.
▷최근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성적 대상화, 외모 평가 등 ‘불편한 현실’을 거부하는 행동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은 2일 반라 시위 사진을 음란물로 보고 삭제한 페이스북코리아에 항의해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탈코르셋’ 운동도 퍼지고 있다. 화장, 긴 머리, 다이어트 등을 사회가 강요한 ‘코르셋’이라며 색조화장품을 부수거나 쇼트커트로 자른 사진을 SNS에 올린다.
▷이른바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의 준말)만의 일이 아니다.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를 물들인 붉은 행렬을 보면 말이다. 홍익대 미대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유출한 여성이 구속된 사건을 두고 ‘편파 수사’라고 규정하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2차 집회에는 1만50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지난달 19일 열린 1차 집회 때보다 참가자가 부쩍 늘었다. 여성의 분노를 보여준다며 빨간 옷을 입어 붉은 물결이다.
▷몰카 피해자가 남성이라 수사가 신속했다는 주장은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이 표출하는 집단 분노에는 절박함이 있다. 지금의 20대는 공부면 공부, 학급에선 반장 등 여러 측면에서 남학생을 능가하는 ‘알파걸’로 자랐다. 그런 여성들이 화장실 몰카, 취업 차별 등 여전히 후진적인 현실을 맞닥뜨리곤 페미니즘에서 해답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도 전보다 좋아지지 않았느냐”는 말은 마초 또는 꼰대의 변명일 뿐이다.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의 액션은 계속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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