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규제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구구한 논의는 무시되거나 생략되면서 ‘이상의 덫’에 갇히는 사례도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 캐피털 등이 취급하는 스톡론의 위험관리시스템(RMS) 이용료 체계를 변경하라고 권고했다. 스톡론은 주식이나 예수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주식 매입자금 대출이다. 과거 일부 주식투자자들이 대부업체에서 고금리로 자금을 빌린 것과 달리 스톡론을 이용하면 2∼4%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톡론은 신용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를 확대해줄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았다.
현재 스톡론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은 대출이자와 함께 첫 거래 때 한 번만 RMS 플랫폼 이용료를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금감원은 “소비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으로 이용료를 폐지하고 1회성으로 내던 이용료를 대출이자에 포함시키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의 권고대로 규제가 시행되면 스톡론 이용자들로서는 당장의 이용료 부담이 없어진다. 하지만 오래 쓸수록 이용료가 포함된 이자가 늘어나는 구조로 바뀌기 때문에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현재는 최초 1회만 이용료를 부담하면 최장 5년간 이용할 수 있지만 이를 대출이자에 합치게 되면 그만큼 전체 금융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고객 부담을 덜어준다는 당초 취지와 다를 뿐 아니라 초기 부담이 줄어드는 점을 악용한 작전세력의 투기수단으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감독당국의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번 이용료 제도의 변경은 핀테크 육성과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스톡론 대출의 핵심인 RMS는 증권사, 저축은행 등 여신금융회사와 제휴를 통해 온라인으로 주식 매입자금 대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특허 등록된 핀테크 기술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레버리지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료 체계가 변동될 경우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스톡론 업체들이 고사(枯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법 대부업체의 횡행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규제의 역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RMS 이용료 제도 변경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RMS 이용료 제도를 개선하려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처럼 최초 1회만 이용료를 받는 상품과 이용료 없이 대출금리를 높여 받는 상품을 모두 취급하도록 해 고객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금감원이 추진하는 방식처럼 무조건 초기 이용료 없이 금리를 높여 받으라는 것은 장기 이용 고객에게 불리할뿐더러 오히려 고객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감독당국은 RMS 이용료는 시스템 용역과 담보관리 수행을 위한 대손비용 등의 재원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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